국토교통부의 핵심 보직인 기획조정실장이 두달 반 가까이 공석이다. 기조실장은 국토부 내에서 장관, 1, 2차관 다음으로 공무원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직급이고, 국회 등 외부와의 교류가 많은 자리다. 공석인 국토부 차기 기조실장으로 하동수 청와대 국토교통비서관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종시 관가가 술렁이고 있다.

청와대와 각 부처 사이의 주요 정책을 조율하는 비서관 자리는 일반적으로 차기 차관으로 영전하는 게 일반적인 인사 관행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1급 고위직인 청와대 국토교통비서관이 국토부 기조실장으로 이동하는 것은 수평이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권 말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인사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정권 말인 것이 실감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일 국토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청와대는 노 장관 취임 직후였던 지난 5월 21일 백승근 당시 기조실장을 국토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등 1급 인사를 단행했다. 변창흠 전 장관의 불명예 퇴진 이후 단행된 1급 인사였다. 백 당시 실장은 3개월 만에 차관급인 대광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5월 취임한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그가 취임한지 2개월 반이 돼가지만 기조실장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다./연합뉴스

이후 8월 현재까지 국토부 기조실장 자리는 공석이다. 2개월 반 가까이 주요 보직을 비워두고 있는 것이어서, 국토부 내·외부의 불만은 상당하다. 한 국토부 관계자는 “장·차관 다음 의전 서열일 정도로 중요한 자리를 수개월째 비워두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 도로 인프라를 총괄하는 도로국장 자리도 공석이다.

국토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조실장 인사는 8월 중순으로 예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차기 국토부 기조실장으로는 하동수 비서관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 비서관은 지난해 7월 청와대로 발령나기 전까지 부동산 정책을 수립하는 주택정책관을 역임했다.

차기 기조실장 인사를 두고 관가에서는 “정권 말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청와대에서 일했던 하 비서관이 차관급이 아닌 실장급으로 국토부에 복귀하는 것을 두고 나오는 소리다. 공무원들 사이에서 청와대 근무는 ‘고생’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다음 인사에서 우대를 받는다.

하 비서관 이전에 국토교통비서관이었던 인물인 윤성원 국토부 1차관의 인사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윤 차관은 국토정책관을 하다 지난 2017년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비서관실에 주택도시비서관으로 임명됐다. 이후 국토교통비서관을 역임하다 차관으로 국토부에 복귀했다.

다른 부처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취임한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으로 10개월 근무한 후 차관으로 영전했다.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2018년 10월부터 2년 가량 청와대 통상비서관, 신남방신북방비서관을 역임 한 후 차관으로 승진해 친정에 돌아왔다. 강성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도 산업부 통상차관보를 역임한 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산업통상비서관을 거쳐 차관으로 영전했다.

하동수 비서관이 국토부 기조실장으로 이동하는 배경은 ‘각종 부동산 입법이 시급하다는 청와대의 인식 때문’이라는 게 국토부 안팎의 시각이다. 국토부에서도 누구든 기조실장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요구가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그 보좌관들도 국토부 기조실장 공석을 두고 “불편을 겪고 있다”는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소관 법안 작업을 하는 등 의정활동을 하면서 국토부에 부탁을 하기도 조언을 받기도 해야하는데, 사안을 총괄하는 주요 보직자인 기조실장 자리가 비어있어 불편을 겪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국토부 내부에서는 ‘직업 관료 입장에서는 청와대 보좌진으로 대통령 임기 끝을 함께하는 순장조가 되는 것보다는 자기 부처에서 확실히 자리 잡는 게 실속 차원에서 나은 것 아니냐’라는 반응도 나온다. 한 국토부 관계자는 “1차관은 주택 정책, 2차관은 교통 정책을 맡고 있지만 법안이 어디 국토와 교통으로 딱 잘라서 나눌 수 있는 것들인가”라며 “두 분야 모두의 협조가 필요할 때 국회에서 찾는 존재가 기조실장이었는데, 두달이나 비어있으니 그 불만이 상당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