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5월 임기가 끝나는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세법 개정안이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제 지원 등으로 채워졌지만, 재계와 세제 전문가들은 경제활성화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세법개정으로 인한 세제 혜택이 삼성, SK, LG 등 최상위권 대기업으로 9000억원 가량 집중되기 때문이다. 2017년 법인세 과세표준(이하 과표) 구간을 4개로 늘리고, 과표 3000억원 초과 대기업에 적용되는 최고세율을 27.5%(지방세 포함)로 올리는 등 증세를 한 문재인 정부가 집권 마지막해 일부 대기업에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투자 확대를 위한 경제 활력을 위해서는 일부 기업에만 적용되는 차별적인 세제지원 혜택이 아니라 다른 나라보다 높은 법인세율부터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선진국 중 가장 많은 4단계로 나눠진 법인세 과세표준 구간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문 정부 집권 4년 내내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등 반기업적 세제를 도입해왔는데, 임기 말이 되서야 세액공제 혜택을 확대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비판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2021년 세법 개정안과 관련해 브리핑을 시작하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대기업에 9000억원 세금 감면…삼성·SK 등 특정 대기업에 지원 집중

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26일 발표한 ’2021년 세법개정안’에는 반도체와 배터리, 백신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과 시설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된 기술에 대한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은 현재보다 2배 이상 올라가고, R&D 투자도 최대 40~50%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2026년까지 5년간 세수가 총 1조505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국가전략기술 지정으로 인한 세제혜택은 상위권 대기업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조세귀착 추정만 보더라도 올해 세법개정안으로 대기업에 대한 세부담 감소가 8669억원으로 전체 세수 감소분의 57.6%에 달한다. 중소기업 세부담 감소는 3086억원, 서민·중산층 세부담 감소는 3295억원으로 대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정부는 서민·중산층,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의 세수 감소가 큰 배경으로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 코로나 등 감염병에 맞설 백신 개발, 미래차 등 차세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선택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이 분야의 신기술을 중점 육성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 사업을 위한 대기업의 투자 확대를 이끌어내는 게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번 세법 개정으로 세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거론되는 기업은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SK이노베이션(096770),LG에너지솔루션(373220),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셀트리온(068270) 등이다. 법인세 인상으로 집권을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임기말에는 특정 대기업에 감세 지원을 몰아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 세무법인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핵심 기술, 산업에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은 인정할 수 있지만, 특정 대기업에 대한 세제지원이 집중되는 것으로 인해 조세 형평성 악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장비 국산화

◇ 법인세 증세하고 선별적 감면 혜택은 ‘불공정’

하지만 이같은 임기 말 ‘급선회’에 대해서는 재계에서도 반응이 엇갈린다. 혜택을 받는 쪽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지만, SK나 LG, 삼성 등 일부 기업에만 감세 효과가 있는 세제 지원 혜택을 주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국가전략기술에 해당되지 않은 대·중소기업에 대한 세수 지원 효과는 향후 5년간 150억원에 불과하다. 더욱이 법인세 최고세율을 인상하는 등 내내 대기업 증세 기조를 유지하다가 이제와서 선별적 혜택을 주는 것에 대한 불만도 크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대기업 증세 기조를 유지했는데, 특히 법인세 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최고세율을 24.2%에서 27.5%(지방세 포함)로 올린 세법개정으로 우리나라는 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법인세율 상위 9위 수준으로 올라섰다. 지난 2010년에만 해도 법인세율은 24.2%로 22위에 불과했지만 10년 사이 13단계 점프, 상위권에 들게 된 것이다.

그 결과 2017년 59조1000억원이던 법인세수는 2018년 70조9000억원으로 증가했고, 2019년에는 72조2000억원까지 법인세수가 늘었다. 코로나19로 지난해 법인세수는 55조5000억원으로 줄었지만 올해는 65조5000억원까지 회복될 것으로 기재부는 예측하고 있다. 명목세율을 높여놓고 선별적인 세제지원으로 일부 기업의 실효세율을 낮춰주는 방식이 부당하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한 대기업 임원은 “높은 법인세율 등은 그냥 놔둔 상황에서, 재계 서열 최상위권 대기업이 추진하는 사업에 대해서만 파격적인 세제지원을 하는 것은 특혜 시비를 낳을 수 밖에 없는 조치”라면서 “장기적인 시각에서 성장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면, 그간의 증세를 선별적 혜택으로 되돌릴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법인세제부터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文대통령, 경제주체 초청 원탁회의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18일 청와대에서 ‘주요 경제주체 초청 원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정부의 힘만으로 부족하다”며 “연대와 협력의 힘으로 위기 극복의 주역이 되어 주시길 당부드리겠다”고 했다. 이날 재계는 법인세 인하를, 노동계는 재난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회의에는 당·정·청 주요 인사들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뉴시스

◇ “과표구간 축소하고 단일세율 적용해야”

이 때문에 법인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지속 제기되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과표구간을 신설하면서, 한국은 과표 구간이 OECD 국가 중 포르투갈과 함께 4단계로 과표구간이 가장 많은 국가가 됐다. 미국·영국·일본 등 32개 국가는 단일 세율 체계를 택하고 있으며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 2개국은 2개 구간, 룩셈부르크는 3개 구간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법인세에 단일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법인과 소득 재분배는 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법인세의 주체가 되는 불특정 다수의 주주들은 소득 수준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과표 구간 쪼개기를 통한 증세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원칙은 물론 과표 단순화라는 세제의 기본 방향성에 역행한다.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장은 “법인의 소득은 최종 수익이 아니라 주주들의 몫이 거쳐가는 중간 기착지”라며 “세금의 누진성은 소득세만으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만큼 이익 규모와 무관하게 궁극적으로 법인세는 단일 세율로 과세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