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경제 부처 장관들이 연일 오르고 있는 집값을 잡기 위해 대출 규제, 보유세 강화 등 수요 억제 정책을 총동원하겠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날리기 위한 대국민 담화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수요 억제 정책이 집값 폭등의 계기가 됐다는 연구 논문이 국내 최대 경제학회 학술지에 게재된 사실이 화제가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 집 값을 잡겠다며 내놓았던 수요 억제 정책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경우보다 장기적으로 신규 주택 공급을 3%가까이 줄이는 효과를 냈다는 게 이 논문의 연구 결과다. 이 연구에는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인상 ▲취득세 인상 ▲주택담보대출 비율(LTV) 규제 강화 등 가격 안정 정책이 오히려 주택 가격을 올리고, 국민의 복리후생을 감소시켰다는 강도높은 비판을 담고 있다.

28일 조선비즈는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가 쓴 ‘한국 주택 정책의 장기 효과에 대한 연구(On the Long-Term Effect of Recent Housing Policies in Korea)’ 논문을 입수했다. 석 교수와 유 교수는 1970년대생으로 40대 소장파 거시 경제학자들이다.

이 연구 결과는 국내 최대 경제학회인 한국경제학회에서 발간하는 SSCI(Social Sciences Citation Index) 등재 학술지인 한국 경제 리뷰(Korean Economic Review)에 영문판으로 이달 1일 게재됐다.

왼쪽부터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본인 제공

논문은 2017년부터 현 정부가 추진한 일련의 부동산 정책들의 핵심은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 아닌, 수요를 억제하는 데에 중점을 뒀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으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인상을 통해 주택 보유 비용을 높이고 ▲취득세를 인상해 주택 거래 비용을 증가시키고 ▲LTV 규제로 주택 구입 자금 조달을 어렵게 한 세가지 정책을 주요 수요 억제 방안으로 꼽았다. 앞서 2017년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투기 세력의 자금 동원력을 줄이겠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LTV를 기존 70%에서 40%로 제한했다.

논문은 이 세가지 수요억제책이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의 방법론을 통해 분석했다. 경제학의 현상을 설명할 때 ‘기대’라는 요소를 중시했던 루카스 교수처럼, 각 경제 주체가 정부 정책 등 외부 충격에 따라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하면 장기적으로 시장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분석해 본 연구다.

세가지 수요 억제책은 신규 주택 공급, 건설업계 고용을 줄인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신규 주택 공급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하는 ‘GDP 대비 거주 자본 투자(Residential Investment to GDP)’는 정부가 아무 정책을 펴지 않았을 경우 대비 2.85%가 감소할 것으로 관측됐다. 취득세 인상과 보유세 인상이 각각 1.59%, 1.38%씩 신규 주택 공급 감소 효과를 냈다. LTV 규제 강화는 오히려 주택 공급을 0.26% 증가 효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병훈 교수는 “GDP 대비 거주 자본 투자 비율이 ‘마이너스’를 나타낸 것은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주택 시장에 수요가 줄어들더라도, 공급은 더 많이 줄어들어서 주택 가격이 상승한다는 의미”라며 “이러한 수요 억제 정책이 주택 가격을 낮출 수 있는 것은 ‘주택 공급량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아 고정된' 불가능한 환경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문 정부 부동산 규제가 미친 효과. 아무 정책도 하지 않았을 때와 각 규제를 시행했을 때를 비교한 값이다. 단위는 퍼센트(%)./논문 캡처

논문은 주택 담보대출 규제를 강화의 효과에 대해 “순자산이 적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소비자들은 주택을 구매할 수 없으므로 금융 자산에 저축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금융기관에 자금 공급이 늘어나는 것이므로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실질이자율을 낮춘다”고 분석했다. LTV 규제로 인해 당장 가지고 있는 자산이 부족한 청년층의 경우 집을 사는 대신 돈을 모으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논리다.

실질이자율의 하락은 자금력이 있는 현금 부자들의 주택 구매 수요를 자극하게 된다. 논문은 “주택 담보대출 없이 주택 구매가 가능한 소비자들은 실질이자율 감소로 금융자산의 수익률이 낮아져,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주택에 투자를 늘리게 된다”며 “상대적으로 부유한 소비자들의 주택 수요 증가가 가난한 소비자들의 주택 수요 감소를 압도해 장기적으로 주택 가격이 오르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와 더불어 논문은 “주택 보유세·취득세 인상은 주택의 보유와 거래 비용을 증가시켜 주택 수익률을 낮춘다”며 “모든 소비자들이 주택에 투자를 줄이고 금융 자산에 저축을 늘리게 하는 요인이 되고, 실질 이자율을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고 썼다. 이자율이 떨어지면 기업이 자금을 조달해 투자를 하는 것이 쉬워지고, 투자가 늘어나면 자본 설비가 늘어나게 된다.

논문은 “자본설비가 늘어나면 이를 활용하는 제조업에 유리해져 제조업 비중이 늘어나고, 생산방식이 노동 집약적인 건설업은 장기적으로 위축돼 신규 주택 공급이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전체 고용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Share of Construction in Total Employment)이 아무 정책이 없었을 경우보다 2.83%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현 정부의 주택 규제에 따른 국민 복리후생의 장기적인 변화./논문 캡처

나아가 논문은 주택 정책이 국민의 복리후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놨다. 연간 소비단위를 통해 복리후생 증감 효과를 측정한 결과, LTV 규제 강화는 0.007% 증가를, 취득세 인상과 보유세 인상은 각각 0.01%, 0.021%씩의 감소 효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가지 주택 정책을 조합할 경우 국민 복리후생은 장기적으로 0.023%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석 교수는 “오늘날의 정부 정책이 해당 정부의 임기가 끝나고 다른 대통령이 계속 나올 때까지 과연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찰에서 이 연구를 시작했다”며 “단기적으로는 주택 공급에 큰 변화가 없을지라도 장기적으로 이 정책으로 신규 주택 공급이 억제되고 주택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도출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