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을 위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가계부채가 폭증한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꺾일 경우 국내 경제도 타격을 받을 것이란 한국은행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현재 치솟고 있는 집값이 추후 조정될 상황에 대비해 미리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한국은행이 ‘금융불균형’ 대응 차원에서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또다시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불균형이란 초저금리에 돈을 빌려 부동산, 주식, 암호화폐 등에 투자하는 사람이 늘면서 자산시장이 과열되고,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상을 뜻한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765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부동산원의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올해 상반기 3.18% 오르며 이미 지난해 연간 상승률(3.01%)을 넘어섰다.

한국은행은 20일 발표한 ‘주택가격 변동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의 비대칭성 분석’이라는 ‘BOK이슈노트’ 보고서에서 “가계부채 수준이 높을 경우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소비 증가 효과보다 주택가격 하락시 가계의 차입제약으로 인한 소비감소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주택가격은 일반적으로 ‘부의 효과’와 ‘차입제약’을 통해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국은행은 설명했다. 주택을 보유한 가계는 주택가격의 변동을 자산의 증감으로 인식해 소비를 늘리거나 줄이게 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집값이 상승하면 담보가치도 오르고, 이는 가계의 차입 여력을 높여 소비를 촉진한다. 반대로 집값이 떨어지면 차입 여력도 악화돼 소비가 줄어든다는 논리다. 소비가 늘거나 줄면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압력도 커지거나 작아진다.

주택가격과 소비 / 한국은행

한국은행이 이런 ‘주택가격 → 소비 → 인플레이션’ 경로를 중심으로 집값 변화가 우리나라 실물경기와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집값이 오를 때보다 내릴 때 소비와 물가도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실제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주택가격 하락폭이 컸던 주요 11개국의 주택가격 고점 전후 8분기 동안 소비증감과 인플레이션을 살펴보면, 주택가격 하락 시 소비가 더 크게 감소하고 인플레이션율이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또 가계부채 수준이 높을수록 집값 하락에 따른 충격이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주택담보대출(LTV)은 75%와 40%로 나눠 충격 정도를 분석했다. 주택가격 하락 수준은 과거 집값 하락폭이 가장 컸던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같은 20%로 정했다. 조사 결과 주담대 비율이 40%로 낮을 때는 집값이 20% 하락해도 소비와 고용에 별다른 영향이 없었지만, 주담대가 75%일 때는 집값이 떨어지면 소비와 고용 모두 8분기 이내 4%까지 급락했다.

보고서는 “이처럼 가계부채 수준이 높을수록 주택가격 하락은 소비와 고용 부진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주택가격 하락이 차입 가계의 차입제약을 높여 소비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결과적으로 주택가격의 변동성 확대가 실물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게 보고서의 주장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최근과 같이 주택가격이 높은 상승세를 지속할 경우 그만큼 주택가격 조정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가계부채가 누증된 상황에서 대내외 충격으로 주택가격이 조정을 받을 경우 우리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경제주체들의 레버리지(차입을 이용한 투자)를 안정적인 수준에서 관리하는 등 금융불균형이 누적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 관계자는 “부동산뿐 아니라 주식, 암호자산 등 자산시장 전반에 레버리지를 통한 자금쏠림이 심화되고 있어, 자산시장 관련 리스크가 더 확대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그동안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금융불균형 완화 차원에서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지난달 “최근 자산시장으로 자금쏠림 현상이 지속되고 있고 가계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해 금융불균형이 누적되고 있어 이에 유의해서 통화정책 운용할 필요성이 커졌다”면서 “금융불균형 대응을 소홀히 하면 중기적으로 경기와 물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이르면 8월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이달 들어 코로나 확산세가 심화되면서 인상 시점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