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율 100%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가축 방역 당국인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만큼이나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분야다. ASF에 대해 농식품부는 2019년 9월부터 가장 높은 단계의 방역 수준인 ‘심각’ 단계로 위기경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년 가까이 초경계모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가축 방역 관계자들이 지난달 31일 강원도 양구의 한 양돈 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검사를 위해 돼지 채혈을 하고 있다.

7일 아프리카돼지열병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지난 5월 강원 영월 돼지농가 이후 추가로 발견된 양돈 농가에서의 ASF 확진 사례는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ASF 방역 조치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달 5일 현재까지 확진 누계 상황은 양돈의 경우 17건(경기 9건, 인천 5건, 강원 3건), 멧돼지 1444건(경기 635건, 강원 809건)이다.

최근 2개월간 확진 사례가 없음에도 정부는 ASF 종식을 선언하지 못하고 있다. 농식품부 방역정책국은 2년 째 ‘비상' 체제로 근무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지난 5월 12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에서 ‘관심’ 단계로 하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야생조류에서 1개월 이상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지난해 11월말부터 6개월간 창궐한 AI의 종식을 사실상 선언한 것이다.

고병원성 AI보다도 발생 빈도가 더 낮은 ASF에 대해 중수본이 종식 선언을 못하는 이유는 두가지다. ASF 감염 원인인 멧돼지의 특성, 그리고 백신 상용화의 지연 탓이다.

ASF를 양돈농가에 전파하는 주체는 야생 맷돼지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사시사철 산에 살고 있는 멧돼지가 내려와서 양돈 농가에 감염시키는 것이 ASF의 주된 전파 경로”라며 “날개가 있어 특정 시점이 되면 한반도를 떠나는 고병원성 AI의 전파자 철새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고병원성 AI의 경우 감염병 전파 주체가 철새이기 때문에 일정 시기가 되면 한반도를 떠난다. 이 때문에 방역 당국에서 예측이 가능하다. 이번에 조류인플루엔자 중앙사고수습본부가 AI 위기 경보를 낮출 때도 “5월 현재, 철새는 대부분 북상했다”는 것을 근거로 들기도 했다.

야생 멧돼지 관리 주체가 농식품부가 아닌 환경부인데, 환경부도 자유롭게 이산 저산 돌아다니는 멧돼지에 대한 통계를 마련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야생멧돼지에 의한 ASF 감염 예방 조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육 돼지에서는 5월 이후 ASF 발생이 거의 없었지만, 야생 멧돼지에게선 매달 꾸준히 확진 사례가 나오고 있다.

ASF 백신이 아직 상용화가 안 됐다는 점도 종식 선언을 불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 검역본부 뿐 아니라 중국, 미국, 스페인, 러시아 등 전세계가 매달려 ASF 백신 개발을 하고 있고, 선점하는 곳에서 큰 돈을 벌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러스의 변이가 잦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상용화를 해야하는 데 이 기술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 장마가 예상되면서, ASF 바이러스가 양돈 농가로 유입될 위험성에 대해 방역 당국은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집중호우로 방역 울타리가 훼손돼 야생 멧돼지가 방역대를 벗어나 오염지역을 확대하거나, 북한과의 접경 지역에서 오염원이 하천을 타고 떠내려올 것에 대한 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