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의 지식재산권 관리 자회사인 ㈜케이아이피(카이스트IP)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 AMD를 상대로 3차원 반도체 설계 기술인 핀펫(FinFET, Fin Field Effect Transistor) 관련 공개 분쟁을 시작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케이아이피는 과거 삼성전자, 애플, 퀄컴 등과도 관련 분쟁을 진행한 바 있다.

핀펫은 3차원 반도체 설계 핵심기술로, 삼성전자, 인텔, 애플 등 대부분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들이 이 기술을 채택해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공학과 교수가 2001년 원광대 재직 시절 KAIST와 함께 개발한 기술이며 현재는 케이아이피에 특허권이 양도돼 있다. 한국은 2002년, 미국은 2004년에 각각 특허를 출원해 등록됐다.

AMD 최고경영자(CEO) 리사 수가 2019년 1월 미국 라스베가스 CES 행사에서 주제 발표 중인 모습. / 로이터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달 23일 핀펫 소자 특허권 침해 불공정무역행위 조사를 개시하기로 결정하고 지난 6일 당사자에게 이를 통지하는 절차를 마쳤다고 밝혔다. 이는 AMD가 핀펫 기술 특허권을 침해하는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카드를 해외에서 국내로 공급한 것에 대해 불공정무역행위 여부를 조사해 달라는 케이아이피의 청구를 산업부가 받아들인데 따른 것이다.

불공정무역행위 조사 및 산업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부는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물품을 공급·수입·판매하는 행위 금지할 수 있다. 불공정무역행위 조사는 통상 개시 결정일로부터 약 6~10개월 간 진행되며 양 당사자 서면조사, 기술 설명회, 현지 조사 등을 거친 후 무역위원회 의결을 통해 불공정무역행위 여부를 판정한다. 만약 피신청인의 행위가 불공정무역행위에 해당한다는 판정이 나오면, 피신청인에게 수출입 중지명령 등 시정조치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무역위원회는 “케이아이피의 조사신청서를 검토한 결과, 조사대상물품이 조사신청일 기준 2년 이내에 해외에서 국내로 공급된 사실이 있는 등 조사신청요건을 갖추었다고 판단해 불공정무역행위 조사 개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케이아이피가 AMD를 ‘수입 금지 조치’로 압박해 핀펫 기술에 대한 로열티를 확보하기 위한 협상의 ‘지렛대’ 성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지 케이아이피는 삼성전자, 퀄컴, 애플 등을 포함한 주요 반도체 업체들에 대해 소송 등을 진행하다가 당사자간 합의 후 이를 취하해왔기 때문이다.

앞서 케이아이피는 지난 2016년 삼성전자, 퀄컴, 글로벌파운드리 등 3사를 상대로 핀펫 특허기술을 침해해 수십억 달러의 부당이익을 얻었다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2020년 2월 2억달러를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이 나왔고, 그 해 9월 소송 당사자들이 합의가 이뤄지면서 케이아이피는 소송을 취하했다.

2017년에는 케이아이피가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아이폰 등의 AP칩을 TSMC가 제조해 납품하는 과정에서 핀펫 특허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하며 무역위원회에 불공정무역행위 조사신청서를 제출했고, 이에 애플과 TSMC가 각각 특허 무효심판 및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분쟁이 확대됐다. 2019년 3월 케이아이피는 당사자간 합의를 이유로 무역위에 조사신청 철회서를 제출해 불공정무역행위 조사는 종결됐다. 업계에서는 당시 케이아이피가 합의 과정에서 특허 사용료 등을 확보해 조사신청을 철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애플과 TSMC가 케이아이피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 무효심판 및 민사 소송도 모두 취하됐다.

이번 조치로 미국 소송전 당시 케이아이피의 상대방이었던 글로벌파운드리로부터 반도체를 공급받는 AMD의 핀펫 특허 사용료 협상이 난관에 부딪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 “미국 소송에서 상대 중 하나였던 글로벌파운드리는 소송 취하 전 합의로 미국 특허 침해에 대해서만 면책을 받고 한국 등 나머지 특허에 대해서는 면책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이 때문에 케이아이피측이 글로벌파운드리로부터 반도체를 공급받았던 AMD와 로열티 관련 수개월간 협상을 진행해왔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