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7일 관세청은 정부 부처 중 가장 먼저 비트코인 등 자산자산 규제 성과를 내놓은 정부 부처가 됐다. 가상자산을 이용한 ‘환치기’ 사례를 대거 적발해 공개하면서 불법적으로 이전된 자금 1조4000억원과 환치기 조직 10개를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달만에 관세청은 처지가 180도 바뀌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실은 지난달 22일 ‘평택세관에서 직원 A씨가 감시종합상황실의 공용 PC와 전기를 이용해 가상자산을 채굴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올해 1분기 평택세관의 월간 전기요금이 1306만~1467만원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월 200만~300만원이 더 나왔다는 근거가 익명의 내부 고발 글과 함께 공개됐다. 가상자산의 가격처럼 관세청의 입지도 급등락하는 모양새였다. 다급해진 관세청은 한 가상자산 거래소에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 5월 26일 터키 앙카라에서 한 PC방 운영자가 이더리움 채굴용 컴퓨터를 정비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1일 관세청에 따르면, 관세청은 관련 의혹이 제기된 직후 즉각 자체 감찰에 나섰다. 평택세관의 CC(폐쇄회로)TV를 확인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탐문하면서 사실관계를 추적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개인 노트북이나 외장 채굴기 등을 반입한 정황이 CCTV 및 타 근무자 조사 결과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의혹을 산 A씨는 평택세관에서 24시간 3교대로 운영되는 감시종합상황실 근무자로, 전용 PC는 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시간대의 교대 근무자와 함께 PC를 사용하고 같은 근무 시간대에도 3~4인이 한 조를 이뤄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상황이었다는 이야기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노트북은 크기와 모양으로, 외장 채굴기는 소음 때문에 눈에 잘 띌 수 밖에 없다”면서 “개인 노트북이나 외장 채굴기 없이 공용 PC로 다른 직원 모르게 수개월간 가상자산을 채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권영세 의원실의 의혹제기는 가뜩이나 궁지에 몰린 관세청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는 사안이었다. 당시 관세청은 산하 관세평가분류원의 세종시 특공 논란 등으로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논란이 여론의 도마에 오른 상황이었다.

관세청은 결국 국내 대표 가상자산 거래소인 빗썸에 도움을 요청했다. 관세청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다른 정부 부처들로부터 투자자 보호 등을 위한 책임성을 요구하는 등 고강도 압박을 받고 있고, 사회 전반에서도 ‘투기판을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었던 관세청은 당장 의혹 해소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빗썸에 조사를 요청했다.

결국 빗썸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문제의 평택세관 상황실을 방문해 PC의 사양과 접속 이력 등 채굴 가능성을 기술적으로 점검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 결과 빗썸은 관세청에 의혹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찾지 못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A씨가 쓰던 PC는 외장 그래픽카드가 없는 제품으로 가상자산을 직접 채굴하기에는 성능상 무리가 있었다고 한다.

또 접속만으로 가상자산 채굴을 하는 사이트들이 있지만, 로그 기록을 확인한 결과 해당 PC에서는 접속 이력이 없었다고 한다. 보안프로그램이 설치돼 해당 사이트의 접속이 차단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세청 자체조사 결과, 일간 전력사용량은 A씨가 쉬는 날에도 늘어나는 양상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관세청에서는 근무일지상 A씨의 근무여부와 전기사용량 사이에는 상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1분기 전력사용량이 늘어난 이유는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동현 서울세관 조사2국장이 지난 4월 27일 서울시 강남구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에서 국토교통부와 공조, 가상자산 환치기 등의 수법 등으로 자금을 마련해 서울 시내 아파트를 불법 취득한 외국인에 대한 처벌 규정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따라 관세청은 A씨가 공용 PC나 전기 등 공용 자원을 활용해 가상자산 채굴을 했다는 익명의 의혹 제기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는 잠정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A씨가 가상자산 관련 투자를 한 것은 일부 사실로 드러났고, 이 때문에 근태 관련 조사는 아직 진행중이라고 한다. 관세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 “향후 직원들을 대상으로 근무기강 교육을 강화하고, 차단 대상이 되는 가상자산 채굴 사이트를 더 자주 업데이트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