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억눌렸던 소비가 살아나면서 올해 하반기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경기 회복과 함께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하반기에도 2%선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한국은행은 전망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지속되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예정보다 빨리 인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24일 발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에서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기저효과가 약해지면서 다소 낮아지겠으나, 빠른 경기 회복과 함께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이 점차 커지고 있어 하반기 중에도 2% 내외에서 등락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상반기 소비자물가 상승이 코로나로 인한 기저효과와 국제유가 상승 등 공급측 요인이 컸다면,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은 민간소비가 주도할 것이란 설명이다.

하나로마트 양재점 채소 코너에서 장 보는 시민들.

◇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2% 상회…인플레이션 우려 증대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올해 들어 상승폭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지난 1월 0%대 중반에 그쳤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월중 1%대 올라섰고, 4~5월에는 물가안정목표인 2%를 웃돌았다. 지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6%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2년 3월 이후 약 9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최근의 소비자물가 상승세는 코로나 여파에 따른 기저효과가 반영된 데다 농축산물, 유가 상승 등 공급요인의 영향에 따른 것이라고 한국은행은 평가했다. 올해 초 한파와 조류인플루엔자 영향으로 농축산물가격은 1월부터 10%대의 높은 오름세를 지속 중이며, 이는 재료비 인상을 통한 외식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브렌트유 기준 지난해 말 배럴당 40달러선이었던 국제유가는 최근 70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석유제품 가격을 끌어올렸다.

근원물가 상승률도 2019년 2월 이후 처음으로 1%대로 높아졌다. 지난 1~2월 0%대였던 근원물가 상승률은 4월 들어 1%대로 올라섰고, 5월에는 1.5%까지 상승했다. 근원물가는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지표로,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준다. 한국은행은 “근원 인플레이션은 최근 우리 경제의 회복세가 빨라지면서 과거 위기 당시와 비교해 이른 시점에 상승 전환했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근원물가가 다시 높아지는 데 14개월 걸렸으나, 이번 코로나 위기 이후에는 4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 근원물가 내년까지 1%대 후반까지 꾸준히 상승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커지고 예상보다 경기 회복 속도가 빨라지면서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세계 경제는 백신접종 확대 등에 힘입어 점차 정상화되고 있고, 국내 경제는 수출과 설비투자 호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소매판매와 소비자심리가 코로나19 확산 이전 수준을 회복하면서 민간소비 부진이 완화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을 주도한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 압력도 하반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은은 평가했다. 국제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의 감산폭 축소, 이란의 원유 수출 재개 등으로 수급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봤지만 세계 경제 회복으로 원유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어 당분간 배럴당 60~70달러에 육박하는 고(高)유가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구리, 철광석, 알루미늄 등 기타 원자재 가격도 공급차질 등으로 수급불균형이 지속되면서 당분간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재 가격 전망 / 한국은행

한국은행은 향후 경제활동 정상화 과정에서 수요와 공급측면 모두 물가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우리나라 소비자물가가 하반기에도 2% 내외에서 오르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내년에는 유가, 농축산물가 등 공급요인의 영향이 줄어들면서 소비자물가 상승세도 1%대 중반 수준으로 둔화될 것으로 관측했다.

한국은행은 근원물가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반등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은은 “경기개선 흐름이 지속되면서 근원물가 상승률이 하반기 중 1%대 중반대로 오르고, 내년에는 1%대 후반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근원물가의 움직임은 근원물가의 약 70%를 차지하는 서비스물가의 움직임과 유사한데, 서비스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숙박, 음식점 등 내수 업황이 좋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정부정책 측면의 물가하방압력도 점차 줄어들면서 근원물가를 구성하는 공공서비스물가도 상승세가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가 추진한 고교무상교육과 무상급식 확대의 물가 하락 영향이 축소되고,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 효과가 소멸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앞당길 가능성이 높다. 특히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은 중앙은행이 금리인상 등을 시작할 때 주된 명분으로 활용되는 만큼, 한은이 이르면 오는 10월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다만 한은은 “향후 물가 전망 경로에는 국제 원자재 가격과 글로벌 인플레이션 추이, 코로나19 전개 상황에 따른 소비 개선흐름의 속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면서 물가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