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24일 삼성웰스토리에 구내식당 일감을 몰아준 혐의를 받는 삼성그룹에 부당지원 사건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2350여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단일 과징금만 1000억원이 넘어 이 역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공정위는 삼성웰스토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를 진두지휘한 혐의를 받는 최지성 전(前)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전자를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다른 대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 사건과 비교해도 공정위의 제재 수위가 센 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조사한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제재를 결정하는 전원회의에서 삼성그룹의 웰스토리 급식 일감 몰아주기와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작업과의 연관성,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 일가의 관여 여부 등을 인정받지 못했다. 또 현직 임원 4명에 대한 고발을 요청한 기업집단국의 요청도 기각됐다. 구체적인 관여도를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입증하지 못한 사안에 비해 공정위의 처벌 수위가 높다는 반응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위는 이날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웰스토리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기여했다는 표현을 쓰고, 고발되지 않은 임직원의 성(姓)과 직급, 직책 등 구체적인 인적 정보를 공개했다. 전원회의가 인정하지 않은 혐의를 마치 입증된 혐의처럼 읽히도록 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 부처인 공정위가 민간 기업인 삼성을 보도자료를 통해 압박한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앞서 자진시정 제도인 동의의결을 신청했음에도 공정위가 검찰 고발을 이유로 기각한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총수일가 부당지원’이라는 틀에 사건을 끼워맞추려다보니 합리적 판단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육성권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이 24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삼성웰스토리에 사내 급식 몰아준 삼성그룹 부당지원행위 제재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계성 입증 못하고 “기여했다” 심증으로 보도자료 쓴 공정위


“웰스토리는 에버랜드(제일모직) 입장에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했다”



“웰스토리는 이 사건 단체급식 내부거래를 통한 안정적 수익 창출을 바탕으로 총수일가의 핵심 자금조달창구(Cash Cow)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구(舊)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 삼성물산이 최초로 공시한 분기 보고서(2015년 9월)를 살펴보면, 삼성물산 전체 영업이익의 74.76%가 웰스토리로부터 발생하였음이 확인된다.”

공정위는 이날 발표한 보도자료에 이같이 적었다. 웰스토리 부당지원이 이재용 부회장 승계작업을 위한 것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문장이다.

하지만 막상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공정위 사무처는 웰스토리 일감 몰아주기와 승계구도나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의 직접 연결고리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총수일가가 제재에서 제외된 점도 이를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육성권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이날 사건발표 브리핑에서 “이재용 부회장 승계와 이 사건 지원행위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인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공정위의 재판부인 전원회의에서 기각된 혐의를 보도자료에서는 교묘한 방법으로 강조했다는 점을 자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육 국장은 “웰스토리가 캐시카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제일모직, 즉 에버랜드 입장에서는 웰스토리가 합병에 기여한 것이 아니겠냐는 의미”고 설명했다.

즉 삼성웰스토리 일감 몰아주기가 이재용 부회장 승계작업에 연관됐다는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웰스토리가 삼성물산 영업이익에 차지하는 비중 등 정황증거 만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기여했다'는 심증을 보도자료에 반영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확정된 사실을 발표하는 정부 공식 문서인 보도자료를 정황, 심증으로 썼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말했다,.

◇고발 못한 현직 임원 姓·직위 공개해놓고 “국민 알권리 보호”

또 이 사건에 관여한 현직 임직원에 대해서도 공정위는 이례적으로 성(姓)과 직위를 공개하고, 이들의 관여 행위 역시 보도자료에 담았다. 이들은 당초 심사보고서에 고발 의견으로 전원회의에 넘겨졌지만, 위원회에서는 기업집단국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미전실 소속으로 사건에 개입했지만, 검찰 고발 요건을 충족할 정도로 법 위반이 중대하지 않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고발 대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피심인의 신원을 추측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담합 기법을 공개하기 위해서'라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을 때만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게 통상적인 공정위의 업무관행이었다. 공정위는 통상 피심인을 보호하기 위해 성이나 직위 등을 공개하지 않고 이니셜로 처리하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담합이 아닌 일반 부당지원 사건의 경우 더욱 정보를 철저히 가리는 편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이 사건의 경우 모든 정보를 가리면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될 수 있어, 최소한의 정보인 성과 직함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정위가 조사 과정에서 비협조적이었던 삼성에 대해 보복성 처분을 내린 것이 아니냐'라는 격앙된 반응이 나올 정도로 재계에서는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성과, 직책, 직함을 공개하면 사실상 실명을 공개한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라면서 “공정위가 확정된 처분과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비난이 돌아가도록 피의사실을 공표한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삼성웰스토리 일감 몰아주기 사건 제재 결과 보도자료에서 법적 처벌 대상이 아닌 삼성전자 임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해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2000억원 동의의결은 ‘퇴짜’…업계 “비합리적”

앞서 삼성그룹은 자진시정 제도인 동의의결을 신청하고 부당 지원 문제를 스스로 시정하겠다고 했지만, 공정위는 이를 기각한 바 있다. 사실상 이재용 일가 회사인 삼성웰스토리를 자금창출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부당지원 행위의 법 위반 정도가 검찰 고발 요건을 충족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공정위는 이 사건이 지금은 해체된 미래전략실의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당시 삼성그룹은 자진시정안으로 약 2000억원의 상생기금을 제시했다. 1500억원의 중소기업 금융지원과 300억원의 스마트 팩토리 구축 기금 등이다. 당시 중소급식 업계에서도 법적 제재보다 이같은 상생 방안 실현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제재로 인한 법적 공방으로 갈등이 길어지면 급식업계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등에서도 공정거래 구조를 복원할 수 있는 방안이라면 동의의결 등 전향적인 방식을 택할 수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를 기각했다. 공정거래법 상 검찰 고발건에 대해서는 동의의결을 수용할 수 없는데, 이 사건이 검찰 고발이 불가피할 정도로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삼성이 제시한 자진시정안의 내용 역시 미흡하다고 봤다. 공정위가 삼성전자 등 5개사에 부과된 과징금 2349억원은 부당지원행위 사건 집행 이래 최대 규모다. 하지만 동의의결에서 삼성이 제시한 금액과 비교했을때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이때문에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이 사건을 ‘총수일가 부당지원’이라는 틀에 끼워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진행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기업 구내식당 시장의 공정거래 복원이라는 목적보다 ‘이재용 승계 작업 지원용’이라는 프레임에 맞춰 사건을 구성했지만 혐의 입증에 실패했고, 이로인해 총수일가는 건드리지도 못한 채 미래전략실 전직 임원인 최지성 전 부회장만 겨냥하게 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