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관 조선비즈 정치팀장

여당의 22대 총선 참패를 전후해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강이 해이해진 모습이 잇따라 감지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최근 민생토론회 자료에 부처명을 연속으로 틀리게 적었다. 기자가 틀린 부분을 알려줬음에도 수정하지 않고 실수를 반복했다. 이른바 ‘복붙(복사하여 붙여넣기)’ 하다 재차 사고를 친 것이다. 대통령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생기는 경우 즉각 수정본을 배포했었다.

대통령실은 지난 6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용산 어린이 정원 ‘깜짝 방문’에 대한 자료와 사진을 배포하면서 사진에 들어간 시민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가 문제가 됐다. 뉴스에 실린 본인 사진을 본 시민이 언론사에 항의해 사진을 내리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일개 기업에서도 초상권 보호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대통령실은 나중에야 부랴부랴 책임을 인정했다.

윤 대통령은 총선 참패 후 첫 메시지를 낼 당시 죄송하다며 국정 쇄신을 위한 인선 방침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는 대통령실의 말이 엇갈렸다. 일부 야권 인사가 대통령실 발로 하마평에 오르자 대통령실은 공식 입장을 통해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 관계자들은 검토 사실을 인정했다. 공식 라인의 메시지를 무시한 직원은 비선 의혹까지 받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총선 참패의 원인 중 하나가 대통령실의 기강 해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집권 3년 차에 레임덕 위기를 맞았다. 주요 사안들에 대해 고집을 꺾지 않은 사실에 더해 민주당에 비해 미흡했던 당의 선거 전략이 겹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참모진의 일 처리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전보다 낮은 지지율(23%)을 기록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사정은 한가하지가 않다. 환율과 유가가 오르고, 재정 적자는 쌓여만 간다. 총선 결과와 무관하게 대한민국은 계속 발전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심장인 대통령실부터 믿음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총선 직후 기자와 만나 “국정 과제는 계속 이어가야 한다”며 3대 개혁, 민생토론회, 저출산 대책 등을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여소야대 국면이지만 정부가 할 일은 당연히 계속 해야 한다. 그러려면 용산부터 바뀌어야 한다.

일단 윤 대통령은 실제로 달라지려 하는 모양이다. 지난주 2년 만에 처음으로 야당 대표 이재명에게 회담을 제안한 윤 대통령은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참모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그는 22일 오전에는 용산 대통령실 기자실로 직접 내려와 정진석(64) 신임 비서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22년 취임 100일 기자회견 후 처음으로 브리핑룸에서 기자들의 질문도 받았다. 윤 대통령의 답변은 야당과의 소통 강화에 방점이 찍혔다.

이제 새로 임명된 정진석 비서실장이 역할을 할 차례다. 국정의 난제들을 풀기 전에 직원들의 기강부터 잡길 바란다. 적극적인 소통에 일가견이 있고, 정무 감각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장점에 더해 대통령실에 제대로 일하는 분위기부터 심어야 국정 수행 키도 다시 쥘 수 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미래 세대가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그에게 108석만을 줬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돌파 해내길 기대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