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

지난달 중순 한 증권회사에서 발간한 리포트가 투자업계의 화제가 됐다. 하나금융투자(현 하나증권)에서 발간한 ‘공매도 금지 정책 전까지 진바닥을 알 수 없다’는 보고서의 핵심은 공매도가 금지되면 증시가 저점을 찍고 반등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되면 주식을 빌려 판 뒤 실제 주가가 내려가면 싼값에 다시 사들여 주식을 상환해 차익을 내는 투자법을 말한다. 2020년 3월 정부가 시장 안정을 위해 한시적으로 금지한 뒤 지난해 5월 코스피200·코스닥150 종목만 허용됐다.

공매도를 주가 하락의 원인으로 꼽은 보고서가 논란이 된 것은 그동안 여의도 증권가에서 통용되던 주장과는 크게 상반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를 주가 하락의 주범으로 비판해왔지만 소위 투자업계의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여의도의 주된 의견은 공매도도 정상적인 범주의 거래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일부 학자와 교수 등 연구자들은 공매도가 기업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주가가 올라간 상태에서 정상적인 가격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가격 발견의 순기능이 있다고도 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금융당국의 수장(首長)들도 태도를 바꿨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시장 상황에 따라 필요할 경우 공매도 금지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라고 언급했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15일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어떤 정책적 수단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측면에서 (김 위원장과)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정부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추진해왔다. 금융당국은 장기간 공매도를 금지한 한국의 상황이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추진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한국을 제외한 그 어떤 선진 자본시장도 이렇게 장기간 공매도를 금지한 곳은 없다고 강조했었다. 또 공매도는 주가 하락과 관계가 없고 공매도 금지는 한시적인 조치일 뿐이라고도 강변했다. 이런 입장은 갑자기 표변했다.

물론 모든 시장 전문가나 당국의 의견이 같을 필요는 없고 다양한 주장과 논의가 이뤄질 수는 있다. 그러나 공매도 일시 금지가 풀린 지난해 5월부터 코스피지수가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다며 공매도를 코스피지수 하락의 주된 요인으로 지적한 것은 과도한 해석으로 보인다. 공매도 규제가 일부 해제된 후 코스피지수가 내려가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과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시기상으로 순차적으로 일어났을 뿐인 현상에 대해 먼저 발생한 일이 나중에 발생한 일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잘못된 인과관계의 오류’라고 하는데 공매도 허용이 코스피지수를 하락시켰다는 주장이 여기에 속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셀트리온처럼 공매도에 민감한 종목이나 또는 일부 시총이 작은 종목들은 공매도의 영향을 받을 수 있겠지만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처럼 대형주가 공매도의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고, 코스피지수는 더욱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이런 식의 주장은 곡학아세(曲學阿世)”라고 했다.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주장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포장한다는 의미다.

여의도 금융투자업계의 이런 가벼움은 공매도뿐 아니라 증시 전망에서도 나타난다. 지난달 초 다수의 증권사가 올해 하반기 코스피지수의 상단을 2800선까지 높여 잡았다. 대신증권(003540)의 경우 코스피지수 밴드를 2580~2870선으로 예상하며 ‘상고하저’의 패턴을 전망했다. 3분기에는 2600선에서 기술적 반등과 안도 랠리 전개를 예상했다. 이 전망은 6월 2일 발표됐다. 이후 6월 10일(현지시각)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8.6% 상승하며 41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자 이 증권사는 “투자 심리는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현재 대신증권은 코스피지수 하단을 2050선까지 낮춰잡은 상태다. 주요 증권회사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대부분의 다른 증권사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하반기 증시 전망을 급격하게 수정했다. 시장 상황이 급변하면서 이에 대응해 전망을 바꾸는 것은 당연하지만 1~2개월도 안 돼 지수 전망치를 500포인트 넘게 바꾸는 것은 분석기관으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미래를 한치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럴 때 투자자들이 의지할 곳은 금융당국과 주요 증권사들이다. 투자자들은 시장이 흔들릴수록 당국과 증권사들이 더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해주길 바란다.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중심과 균형을 잡는 여의도가 되길 기대한다.

[정해용 시장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