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대응도 벅찬데 가상현실까지 신경 써야 하다니, 솔직히 이 버스 타기 싫어요.”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메타버스(Metaverse)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다. 너도나도 메타버스에 뛰어드니 관심을 갖긴 해야겠는데,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메타버스가 궁금해 제페토에 들어가 보니 싸이월드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라며 “과거 싸이월드가 크게 유행했다 시들해졌듯, 메타버스도 마케팅 용도로 활용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처럼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세계’를 의미하는 메타버스는 잠재성만 추정될 뿐, 아직 구체적인 성과를 예상하기 어려운 단계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붐을 주도했던 페이스북은 메타버스로 돈을 벌겠다며 사명을 ‘메타’로 바꿨고, 나이키와 구찌, 소더비 등도 메타버스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BGF리테일, 이마트, 아모레퍼시픽 등이 메타버스 플랫폼에 매장을 내거나 신입사원 채용 설명회 등을 진행했고, 롯데백화점은 상품 전시와 구매가 가능한 메타버스 백화점을 내겠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메타버스가 소셜미디어, 스트리밍, 게임 플랫폼을 대체하며 최대 8조 달러(약 9000조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흐름에도 메타버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기 성과주의가 팽배해서다. 이 기술이 얼마나 새로운지, 당장 매출이 얼마나 나올지만 계산하다 보니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 트렌드 정보회사 트렌드506를 운영하는 이정민 대표는 유통업체가 주목할 것은 메타버스로 인해 바뀔 소비자들의 태도라고 했다.

이 대표는 “인터넷을 학원에서 배운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메타버스는 기술의 발달에 따라 우리가 쓰는 도구가 확장되면서 자연스럽게 생활에 스며들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관계 맺기와 소비의 방식이 바뀌는 양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타버스가 뜬 이유는 소통과 체험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1년 넘게 비대면 생활이 지속되면서 소통과 체험의 욕구를 풀 대안이 필요해졌다. 가구점에 가는 대신 이케아의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해 증강현실(AR)로 자신의 주거공간에 인테리어를 해보는 식이다. 가상현실에서 멋지게 소통하기 위해 아바타에 투자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10대 이용자가 90%를 차지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선 아바타를 꾸미는 아이템을 팔아 월 1500만원을 버는 창작자도 있다고 한다.

메타버스 게임 로블록스에서는 구찌의 한정판 디지털 핸드백이 실제보다 더 비싼 값에 팔리기도 했다. 현실에선 맬 수도 없는 4115달러(약 486만원)짜리 가방이 팔린 이유는 장인이 한땀 한땀 만들어서가 아니라 ‘이탈리아 명품 구찌’로 치장한 아바타를 자랑하고 싶어서다. 오랜 유산이 만든 브랜드 가치는 가상세계에서도 진면목을 발휘했다. 모건스탠리는 “명품 브랜드가 메타버스를 통해 수십 년 동안 구축한 지식재산권(IP)을 수익화 할 수 있을 것”이라며 “2030년까지 메타버스를 통한 명품의 추가 수요가 500억 달러(약 59조원)에 달할 것”이라 전망했다.

소통, 체험, 브랜드 가치…. 메타버스의 속성을 모아놓고 보니 전통 유통업체가 수십 년간 고객을 끌기 위해 매진해 온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메타버스 시대의 유통은 어떤 가치와 철학을 신기술에 담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체험과 경험의 욕구를 만족시킬 이야기나 콘텐츠 없이 대세에 따라 메타버스 안에 장소만 만드는 것은 구시대 쇼핑의 개념과 관습을 메타버스 플랫폼에 옮기는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