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경제 전문지 월스트리트(WSJ) 저널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이 백화점을 열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기존 백화점의 3분의 1 수준인 약 3만 평방피트(2787㎡) 규모로, 자체 브랜드(PB) 상품과 의류, 가정용품, 전자제품 등을 판매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한다.

전통 백화점을 몰락하게 한 전자상거래 업체가 백화점 사업에 뛰어들다니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아마존은 수년 전부터 오프라인 매장을 확충해 왔다. 2015년 시애틀에 아마존 북스를 연 것을 시작으로 2017년 홀푸드 슈퍼마켓 체인을 인수했다. 별점 4개 이상 상품만 모아 파는 아마존 4스타 상점과 계산대 없는 무인 편의점 아마존고도 운영 중이다.

아마존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아마존은 북미에 611개, 해외에 7개 오프라인 상점을 보유하고 있다.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온라인 매출이 38% 성장하는 사이, 오프라인 상점은 5% 감소했다. 올해 2분기 매출이 11% 증가하긴 했지만, 전체 매출 중 오프라인 비중은 4%가 채 안된다.

그런데도 아마존이 오프라인 실험을 강행하는 이유는 온라인에선 ‘물리적 경험’을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아마존은 빠른 배송과 반품 서비스로 미국 온라인 시장 41%를 장악했지만, 패션, 명품, 디지털 등 이윤이 높은 상품군에선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모두 직접 보고 구매하길 선호하는 상품들이다.

미국 금융 서비스 그룹 웰스파고에 따르면 아마존은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옷을 판매했지만, 가품 논란 등으로 고가 의류 판매가 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소매시장에서 오프라인이 가지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사실도 아마존이 오프라인 매장을 탐하는 이유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전체 소매 판매에서 오프라인 판매는 약 84%를 차지한다.

지난 몇 년간 몰락을 거듭해온 오프라인 소매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치명타를 입었다. JC페니, 니만마커스 등 지난해 미국에서 파산보호를 신청한 유통업체 수만 50개가 넘는다.

이른바 ‘소매업 종말(Retail Apocalypse)’ 현상이다. 하지만 아마존의 백화점 개장 계획은 여전히 오프라인 매장이 소매 시장에서 건재하며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런 이유로 국내 유통업계도 오프라인 점포 역량을 재건하는 데 한창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올해만 더현대서울, 롯데백화점 동탄점, 신세계 대전점이 문을 열었고, 롯데프리미엄아울렛 의왕점, AK플라자 광명점이 개점을 앞두고 있다.

이들 점포는 하나같이 ‘물리적 경험’을 내세웠다. 영업면적 절반을 상업공간이 아닌 휴식과 체험 공간으로 조성하고, 이 ‘공짜 공간’을 차별화 전략이라고 홍보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전통 소매업의 관성이 목격된다. 최근 개장한 한 백화점의 관계자는 의도적으로 비워둔 빈 공간(보이드)을 두고 “솔직히 이 자리를 그냥 비워둔 게 아깝다. 매대라도 갖다 놓고 싶은 심정”이라고 고백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를 수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국내 유통업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마존 백화점의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물리적 경험을 강화한 ‘피지털(Phygital)’ 매장을 통해 옴니채널 전략을 구사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그동안 전자상거래 업계가 아마존을 모델 삼아 성장한 점을 고려하면 아마존 백화점 이후 국내에서도 쿠팡 백화점, 네이버 쇼핑센터가 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국 소매시장의 온라인 침투율(약 33%)은 미국(약 16%)의 두 배에 달해, 이는 아마존 백화점보다 더 위협적일 수 있다.

이제 유통업체들은 오프라인에서도 아마존·쿠팡과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우리는 물건을 판매해 돈을 벌지 않는다. 물건을 구매하는 고객의 판단을 도와 돈을 번다”고 했다. 고객이 물건을 사기까지의 쇼핑 여정, 그곳에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