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연봉이 곧 내 두 배가 되겠어요.”

한국 제약·바이오 업계를 분석하는 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국내 바이오 벤처 기업에 최근 했다는 말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관련 애널리스트 인력을 절반으로 줄인 경위를 묻는 과정에서 이 말이 나왔다고 한다. 이 애널리스트는 ‘사람이 줄어서 일이 많아 고되겠다’는 말에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을 해 준 벤처 업계 관계자는 “이 애널리스트의 말이 ‘요즘 한국 제약·바이오 별거 없다. 대세는 중국’이라는 말로 들렸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는 ‘중국 제약·바이오를 다시 봤다’는 얘기가 나온다. 중국은 자국 제약사 시노팜·시노백이 자체 백신을 만들어 전 세계 수출에 나섰다. 중국산 백신의 예방 효능을 두고는 논란이 있지만, 어찌 됐든 시노팜 백신은 45개국에서 긴급사용 승인을 받아 6500만회가 투여됐고, 시노백 백신은 32개국에서 긴급사용 승인을 받아 2억6000만회 분량이 보급됐다.

중국은 첨단 바이오 기술로 통하는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중국 푸싱(福星)제약은 지난달 화이자의 공동 개발사인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계약을 맺고 mRNA 기술을 이전받아 연간 10억회분 물량을 생산키로 했다.

한국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모더나와 mRNA 백신의 병입 포장 위탁생산(CMO) 계약을 맺은 것이 지금까지 성과다. 이것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한국 기업인들과 함께 미국을 방문해 44조원의 대미 투자를 해 주고 이뤄낸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 백신 원액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물론 한국과 중국 사정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국가의 규모가 다르고, 그에 따라 투입되는 자본과 인력의 규모도 다르다. 백신 개발에는 임상시험 과정이 중요한데, 중국은 실험 대상도 많다. 중국은 생명 공학과 관련한 연구 윤리가 선진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느슨해서 신약 개발에 좋은 환경이라는 얘기도 있다.

문제는 이런 환경을 바탕으로 중국 제약·바이오가 한국의 무서운 경쟁자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위기감이 감돈다. ‘모더나가 한국에 mRNA 백신 관련 기술 이전을 해 주고 싶어도 그럴 만한 역량을 갖춘 곳이 없어서 난감해했다’는 말도 돌았다. 이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기술이전 계약을 맺은 중국 푸싱제약은 그 정도 능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우리가 ‘중국 백신을 어떻게 믿고 맞겠냐’라고 무시할 때가 아니란 말이다.

한국 정부만 이런 치열한 산업 현장을 모르는 것 같다. 정부는 문 대통령 방미 과정에서 맺은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글로벌 백신 허브’가 되겠다고 말했다. CMO를 통한 백신 기술 확보를 추진해야 하는 것은 맞는다. 하지만 한국이 진정한 글로벌 백신 허브가 되려면 바이오 기술 역량도 갖춰야 한다. mRNA 같은 첨단 백신 자체 개발을 완주해야 미국에서 이전 받은 기술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토종 백신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이오 기업들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충분히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여당과 정부가 국민 위로 차원에서 전 국민 한 사람당 30만원의 재난위로금과 백신 유급휴가비 등 최대 30조원 규모의 현금 지원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올해 보건복지부 주요 연구 개발(R&D) 예산은 7878억원이다. 여기에 코로나19 백신 임상 지원에는 687억원이 배정됐다. 정부에서 백신 개발에 실패했을 경우 책임 소재를 이유로 예산 배정을 주저한다는 말이 있다.

제약·바이오 기술 개발의 성공률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국내 바이오 벤처 스타트업 1000개가 있으면 그중에 1~2개가 성공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1000개의 도전하는 스타트업이 있을 때 얘기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으면 성공도 없다. 실패하면 또 어떤가. 시행착오는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되고 그것은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실력이 되지 않겠나. 국산 코로나19 백신 임상 3상에 약 2000억원이 든다고 한다. 정부 여당이 ‘현금성 돈풀기’에 쓰는 돈 100분의 1만 국산 백신 개발에 넣어도 임상 3상 비용은 다 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