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탁 기자수첩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인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주춤하고 있다. 금융노조뿐 아니라 민주당 의원, 심지어 윤 당선인과 같은 당 소속인 오세훈 서울시장까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지방으로 이전 한 다른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산업은행 임직원들은 이전 반대 여론 형성을 위해 조직적으로 채팅방을 운영하며 관련 기사에 반대 댓글 달기 운동까지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택금융공사, 자산관리공사, 한국거래소도 큰 소란 없이 부산으로 이전했다.

산업은행 이전 반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산업은행 이전 논의는 뒷전으로 밀렸다.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는 ‘산업은행 이전TF’를 설치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 산업은행의 본부별 이전 방안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이해 관계자들의 가장 큰 명분은 한국의 국제 금융 경쟁력이 후퇴한다는 것이다. 서울을 글로벌 금융허브로 만드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금융 기업과 기관들이 한군데 모여 있어야 시너지를 내고, 글로벌 금융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물어보자. 산업은행이 그동안 여의도에 있었다고 서울의 글로벌 금융 경쟁력이 얼마나 높아졌는가.

산업은행 본점이 여의도에서 사라진다고 서울의 금융 경쟁력이 추락할 정도면 글로벌 금융허브란 목표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편이 낫다. 마찬가지로 산업은행이 이전한다고 부산의 금융 경쟁력이 갑자기 높아질리도 만무하다.

적어도 주요 금융기관이 턱없이 부족한 부산에 산업은행이 있는 게 수많은 민간 금융기업이 위치한 서울에 있는 것보다 산업적 파급 효과가 더 클 수 있다.

부산시가 최근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경제적 측면에서 종합 분석한 결과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동남권 지역 생산 유발 효과는 2조4076억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1조5118억원, 취업유발 효과는 3만6863명으로 분석됐다.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동남권 핵심 산업이 산업은행의 주요 업무 분야와 연관돼 경제적 효과 역시 기대된다.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이전하면 금융은 물론 제조업 등 한국의 주요 산업 분야 경쟁력을 더 강화할 기회가 열릴 가능성도 있다.

산업은행은 이전 대신 연 9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제도인 ‘온렌딩금융’ 등 다른 방법으로도 부산의 금융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해당 지역에 본점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현지 기업들에 주는 무게감과 영향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부산은 국제금융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지난 3월 국제금융센터지수 평가에서 부산은 30위를 차지했다. 국제금융센터지수는 영국 컨설팅 기관인 Z/Yen(지옌)이 매년 3월과 9월 126개 글로벌 금융도시를 평가해 순위를 매긴다.

부산의 순위는 2020년 상반기 51위에서 같은 해 하반기 40위로 올랐고, 작년에는 상반기 36위, 하반기 33위를 기록했다. 2년 만에 글로벌 금융도시 순위 21계단 올라 처음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10위권에 들었다.

뉴욕, 런던,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 오슬로, 오사카 등 세계적 금융도시를 보더라도 해양도시와 금융은 지정학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부산이 고향이거나 특별한 인연이 있어 산업은행의 이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생활 반경을 수도권에서 한 번도 벗어나 본 적 없다. 산업은행이 이전하는 것이 부산을 넘어 국가 미래에 이롭다고 생각할 뿐이다.

수도권 일극화는 일자리 집중-부동산 폭등-혼인율 감소-출산율 저하로 이어지는 연쇄적인 국가적 재앙을 불러왔다. 전국 곳곳을 균형 있게 골고루 성장시키자는 이상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지방 권역 중 인구 800만명 규모로 ‘부울경 메가시티’를 빠르게 조성하고 있는 동남권이 제2의 수도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관점에서 산업은행을 이전하는 것은 단순히 부산의 과제가 아니고 국가적 과제다. 국책은행마저 부산을 피하는데 앞으로 어느 기업이 부산에 오려고 할까.

산업은행이 이전해서 부산이 성장한다는 전제는 잘 못 됐다. 산업은행 이전은 제2의 수도권을 키우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첫 단추일 뿐이다. 산업은행 이전은 금융 경쟁력이 아니라 국가 생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