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법부 판단에도 방역패스를 강행하겠다고 고집하는데, 재판부도 부담스럽겠죠.”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 확인제) 효력정지 소송이 잇따라 제기된 가운데 최근 법원에서 만난 한 판사가 기자에게 털어놓은 속내다. 법원마다 판결이 엇갈린 데다, 정부가 재판부 결정에 즉시항고하면서 방역조치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법원에서는 최근 방역패스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 있었다. 보건복지부가 즉시항고한 사건이 서울고법 재판부에 배당됐는데, 기일이 열리기 전 재판 담당 판사가 신청인 측 변호사에게 “실익이 없는데도 재판을 계속할 것인지 검토해보라”는 전화를 걸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재판부는 정부의 방역조치가 수시로 바뀌는 만큼 소송을 이어갈 것인지 묻기 위한 취지였다고 해명했지만 ‘회유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왜 생각하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담당 판사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은 대표 변호사는 “사실상 소 취하를 종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즉시항고를 취하하거나 유지하겠다고 항고이유서로 답변하면 그에 대해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을 하면 될 뿐”이라는 말에 공감이 됐다.

가뜩이나 방역패스 관련 소송 결과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담당 판사가 신청인 측에 전화를 걸어 취하 여부를 묻는 것은 재판부 스스로 정부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 아닌가. 물론 정부가 학원과 마트·백화점 등 6종 시설에 대한 방역패스 효력을 ‘영구 정지’한 것인지 ‘일시 중단’한 것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상황이라 재판 절차상 효율성을 고려하는 차원이었다 해도 보다 신중했어야 했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는 처음으로 1만명을 넘어섰다. 정부는 늘어난 확진자만큼 방역조치를 가다듬고 촘촘하게 조이려 할 것이다. 방역패스 제도에 변화가 없으면 결국 사법부가 방역조치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로 남게 된다. 우스갯소리로 “요즘 모든 사건이 다 서초동으로 온다”고 하는데, 방역패스의 존폐마저도 법원이 결정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의 방역조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소송해서라도 방역패스 적용을 피하겠다는 이들은 방역패스가 사실상 백신 접종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이들의 경우 특정 구역에 출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백신 접종을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하는데, 정부의 방역패스 정책으로 기본권을 침해받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방역패스 반발 기류가 거센 가운데 정부가 현재의 방역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줄소송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소송 남발은 사회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정부는 국민의 기본권을 고려하는 방역 정책을 내놓고, 그에 대한 기준과 근거를 뚜렷하게 제시해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