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에 노동자 대표의 추천 또는 동의를 받은 이사를 1명 선임하도록 하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지난 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까지 통과하면서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이대로면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오는 11일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법이 시행되면 당장 131개 공공기관은 올해 하반기부터 노동자 대표를 포함해 이사회를 꾸려야 한다.

지금은 공공기관으로 노동이사제 도입 범위가 한정돼 있지만, 재계는 향후 민간 기업으로 확대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말을 들어보면 괜한 우려가 아니다. 그는 노동이사제와 관련해 “공공분야로, 준공공 기관으로 확대하고 나중에는 민간 영역으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이사 자격을 부여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라고 했다.

한국에서의 노동이사제는 문제투성이다. 기업은 전체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고, 이사회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 이를 위한 의무와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계의 추천 또는 동의를 받은 이사는 노조 측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고, 이는 회사 운영 방향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대립이 발생하면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물론, 경영 방향도 흔들려 경쟁력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지금 국내 기업은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기 위해 회사를 잘게 쪼개고 있는데,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헛수고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경제계는 “투자와 고용확대를 저해시키는 큰 불안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노사 관계는 이미 노조 측으로 과도하게 힘이 실려 있다. 국내 기업은 노조가 파업해도 새로운 근로자를 채용해 임시로 생산 현장에 투입할 수 없다. 현행 노조법이 대체 근로를 전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 점거 해산도 제한돼 있다. 지난 7월부터 개정된 노조 3법이 시행되면서 실직자와 해고자 등 비종사 근로자의 노조 가입까지 허용됐다. 이들은 회사에 대한 불만이 큰 만큼 공격적인 노조 활동을 벌일 가능성이 크고, 그만큼 갈등 소지가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기울이는 꼴이다.

새해 들어 각 경제단체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을 고려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달라고 정치권에 호소했다. 기업이 저출산과 같은 국가적 과제는 물론 기후변화 등 지구적 과제에도 힘을 보탤테니 정부는 과감한 규제 개혁과 노동 유연성 등으로 지원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노동이사제 강행으로 기업들의 호소를 무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투자와 고용을 늘리라고 염치없는 요구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