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범 기자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임기 말 문재인 정부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사태 진화 방식을 지켜보면서 문득 4년 반 전 문 대통령의 취임사 문구가 떠올랐다. 지난 22일부터 우리 국민 95만명에게 날아가기 시작한 종부세 폭탄 고지서가 부정 여론을 키우자 청와대와 집권 여당, 정부는 입을 모아 “국민 2%만 내는 세금”이라고 해명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이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98%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주택분 종부세 고지 인원은 94만7000명, 총 세액은 5조7000억원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고지 인원은 41.8%, 세액은 3.16배 증가했다. 1인당 평균 납부 세액은 269만원에서 601만원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게다가 종부세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만의 세금도 아니었다. 충북의 경우 올해 707억원의 종부세액이 고지됐는데, 이는 전년보다 8.8배 늘어난 것이다. 광주는 전년 대비 7배 늘어난 1224억원이 고지됐다.

지난 4년 반은 국론 분열과 편 가르기의 연속이었다. 대통령 취임사 속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은 이임사에 다가가는 이 순간까지 요원하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선언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는 일명 ‘인국공 사태’로 번져 청년층 분열을 야기했다. 무리한 주 52시간 근무 도입, 지나치게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조국 사태 등 문재인 정권의 굵직한 이슈 모두 국민 분열이라는 공통된 아픔을 낳았다.

차라리 종부세 탄생 목적과 존속의 당위를 국가 세제 정책의 관점에서 반복해 설명했더라면 모양이라도 덜 빠졌을 것이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중과세를 통해 다주택자가 집을 팔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재차 강조했다면, ‘그게 과연 통하겠냐’는 비판은 받았겠지만 ‘국민을 갈라치기 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공무원이 정치꾼이나 하는 소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는 이야기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은 상위 10%가 근로소득세의 72.5%를 내는 나라다. 정부가 종부세를 3~4배 올려 받겠다고 ‘정밀타격’한 상위 2%는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국민일 것이다. 문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와 기재부의 고위 당국자들은 세금 납부로 나라 경제에 기여하는 납세자를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로 갈라쳐 모욕했다. ‘세금 납부는 국민의 의무’라는 원칙도 허망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