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자신이 키우던 반려견 두 마리를 B협회에 위탁하고 위탁료를 납부했으나, B협회는 이 반려견들을 다른 유기견으로 오인해 안락사시켰다. 이를 알게 된 A씨는 B협회를 상대로 자신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와 반려견 두 마리가 안락사 당시 느꼈을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도 청구했다. 그러면서 반려견에 대한 위자료를 A씨 본인이 상속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안 쟁점은 동물인 반려견이 위자료 청구권이라는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대법원(2013. 4. 25. 선고 2012다118594 판결)은 “동물의 생명보호, 안전보장 및 복지증진을 꾀하고 동물의 생명존중 등 국민의 정서를 함양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 동물보호법의 입법 취지나 그 규정 내용 등을 고려하더라도 민법이나 그 밖의 법률에 동물에 대하여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규정이 없고 이를 인정하는 관습법도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동물 자체가 위자료 청구권의 귀속 주체가 된다고 할 수 없다. 비록 애완견은 감정을 지니고 있고, 고통을 느낄 수 있으며 때로는 가족공동체 일원으로서 취급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애완견 역시 법적으로는 물건에 불과하므로 애완견의 고통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동물은 물건에 해당한다는 판단이었다.

법무부는 지난 7월 발표한 민법 일부 개정안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를 신설했다. 민법 제98조의 2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넣었다. 다만 ‘동물에 대해서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고, 이들이 인간과의 정서적 교감의 대상이 되는 시대 상황을 반영했지만, 동물을 물건이 아니면서도 물건으로 본다는 애매한 규정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동물은 아직은 권리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 즉 법인격(法人格)이 인정되지 않는다.

민법상 법인격이 인정되는 것은 사람(人)과 법인(法人)뿐이다. 고대 노예는 사람이지만, 법인격이 인정되지 않았고, 외국에서는 동물 뿐 아니라 강(江)과 같은 환경, 즉 자연에도 사람과 유사한 법적 지위를 인정한 경우가 있다. 이처럼 법인격은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법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탄력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동물의 법인격 논의와 유사한 것이 “인공지능(AI)과 로봇이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는 일이다.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는 오비어스라는 AI 화가가 그린 에드몽 드 벨라미의 초상이 43만2500달러(약 5억원)에 낙찰되는 일이 있었다. 이처럼 AI는 많은 분야에서 창작 활동이나 발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저작권법, 특허법이 권리주체를 모두 인간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AI에게는 권리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권리능력이 인정될 수 있을까.

첫째, 스스로 유효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의사능력과 행위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스스로 자유롭게 행동하려는 욕구와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자율적인 사고와 행동을 한다. 현재 수준의 AI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인간의 판단을 보조할 뿐 책임의 기초가 되는 인간의 자유의지나 합리성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둘째, 법인격 부여의 법정책적 필요성 내지 법적 편의가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자연인이 아닌 단체에게 권리능력을 부여하는 법인(法人) 제도는 사회적 필요에 의해서 법정책적 결단으로 탄생한 것인데, AI에게도 이와 같은 이유로 법인격이 부여될 수 있을까. 근대에 이르러 회사·노동조합 등의 단체는 개인으로는 달성하지 못하는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게 됐다. 단체는 다수의 개인에 의하여 구성돼 있으나, 사회적으로는 단일체로 행위하는 것으로 의식되고 있다. 여기에서 법적으로 그 단체 자체에 권리능력을 부여해 단체 자체를 권리의무의 귀속처가 되게해 개별 구성원을 초월한 단체의 독립성·단일성을 보장한 것이 법인 제도이다. 그렇게 본다면 현재로서는 AI가 단일체로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셋째, 사회 현실이 AI를 인격체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여부이다. 반려견과 유사하게 이미 AI나 로봇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로봇의 견고함을 보여줄 목적으로 로봇을 발로 차거나 막대기로 찌르는 동영상을 유투브에 올렸는데, 일부에서는 이를 학대로 규정해 반대했다. 하지만 감정이입이 있다는 것만으로 인격을 부여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고대 로마나 중세 유럽에서는 신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와의 공감대를 이유로 인격을 부여한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2017년 유럽의회는 AI에 ‘전자인(격)’이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결의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AI에 의한 피해 발생은 기존 법규로 해결할 수 있고, 오히려 AI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은 로봇제조자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결론적으로 아직 AI에게 법인격을 부여하려는 시도는 타당성이 부족해 보인다. 다만, AI도 데이터를 활용하고 새로운 경험의 학습 등을 통해 자신의 활동을 결정하고 나아가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질 수 있을 때, 즉 AI의 인간화가 진전되는 경우 AI에게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법인이라는 존재 외에 AI에게도 법인격을 부여하고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과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인지, 어떻게 AI를 통제하면서 인간의 이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 등의 물음에 답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