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겨울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다. 8일간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해서는 가이드와 포터라고 불리는 짐꾼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트레킹 기간 먹을 음식과 사용할 짐을 포터가 운반해준다. 트레킹 시작 포인트에 가면 젊은 포터들이 경쟁적으로 여행객에게 달라 붙어 가격 흥정을 한다. 한 명의 포터가 짊어지는 짐의 무게는 30kg 남짓.

그 짐을 지고 죽을 힘을 다해 히말라야를 오르내린다. 힘들단 핑계로 포터를 도와주지 못한 게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그 포터에게 8일간 일한 대가로 준 돈은 10만원 남짓으로 기억한다.

트레킹을 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히말라야에는 유난히 아이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사람이 많으면 사람값이 싸다. 한국도 사람값이 싸서 경쟁이 치열했다. 과거 한국은 돈벌이가 되는 일은 적은데, 사람은 많았다. 한국 특유의 지나친 사회적 경쟁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봐야 한다.

식당에 가면 간혹 보이던 테이블 오더 기기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늘었다. “여기는 뭐가 맛있어요?”라고 물어볼 기회는 없다. 테이블 오더 기기에는 친절하게 추천 메뉴가 표시되어 있지만, ‘많이 매운가요?’, ‘양은 많아요?’라는 부가적인 질문에는 답을 주지 않는다.

사람과 대화하고, 약간의 편의를 제공받는 것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이제 당연한 시대가 됐다. 직원이 직접 기름을 넣어주는 주유소는 특별해졌고, 식음료를 파는 무인점포도 아파트 상가에 한두개씩 눈에 띈다. 기업 콜센터는 AI가 상당수 대체하고 있고, 상담사와 통화를 위해선 30분씩 기다리기 일쑤다. 기업 콜센터와 통화를 빨리하기 위해선 해당 기업의 VIP가 되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변화는 어쩌면 필연일지 모른다. 사람이 필요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없어서 시작된 변화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 0.65명이라는 인류사에 찾아볼 수 없는 경이로운 수치는 우리 사회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국토연구원의 ‘저출산 원인 진단과 부동산 정책 방향 연구’ 보고서에는 주택 가격과 사교육비를 저출산의 원인으로 꼽았다. 집값과 사교육비 그리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는 청년들로 하여금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란 극단적 결론을 내리게 했다.

역설적으로 저출산으로 인한 사회의 구조적 변화는 이제 아이를 낳아도 될 만한 시점이 됐다는 것을 반증한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현재 수도권 대학과 지방 국립대의 전체 입학 인원은 연 26만명이다. 지난해 수능 응시자는 50만명이었는데, 지난해 태어난 아이들이 대학을 갈 무렵에는 지금보다 대학 입시 경쟁률이 절반으로 떨어지게 된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대학 입시를 위해 사교육까지 시켜가며 경쟁할 필요는 없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집값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구 감소 시대에 집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고 집을 사는 투기 수요는 대폭 감소하게 된다. 투기 수요가 없어지면 지금 집을 못 사면 평생 못 살 것이란 공포도 줄어든다.

정부의 저출산 정책 효용감도 점차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2005년 이후 저출산 대책으로 200조원 이상 쏟아부었지만 급락하는 출산율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출산 지원금, 돌봄 시설, 임대 아파트 공급 등에 천문학적 비용 투입은 계속될 것이고, 출생아 숫자가 줄었으니 과거 50만명이 나눠 갖던 정책 수혜도 이제는 23만명이 나눠 갖게 됐다.

그럼에도 출산율이 올라가지 않는다면 정치권은 세금을 징벌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독일은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자녀가 없는 만 23세 이상 국민에게 일명 ‘싱글세(또는 무자녀세)’를 도입했다. 일본도 저출산세 도입이 예정돼 있다.

저출산으로 아이를 낳을만한 시기가 되면, 출산율이 당장 올라갈까. 어려서부터 학원 뺑뺑이를 돌고, 대학진학과 취업 등 누구보다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온 청년들은 지금 같이 고단한 삶을 자식에게 대물림하길 원치 않는다. ‘앞으로 좋아질꺼야’란 희망고문보단, 한 기업의 출산장려금 1억원 지급 같은 피부에 와닿는 정책으로 청년들의 짐을 나눠들어야 한다.

‘사람이면 사람값을 해야한다’는 말이 있다. 누구보다도 사람값을 잘 하며 사는 한국의 젊은 포터들은 우리 사회가 사람값을 제대로 쳐주고 있는지 여전히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