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성인 사회부장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2018년 6월 15일 예정에 없던 이사회를 열고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 월성 1호기는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원자력발전소(원전)다. 약 5600억원을 들여 노후 설비를 교체하고 2022년까지 연장 운전 승인을 받은 상태였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이날 기자들 앞에서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월성 1호기의 가동률이 40%대로 떨어졌다”며 “2017년 말 기준으로 발전원가는 120원, 판매단가는 60원으로 적자 발전소”라고 설명했다.

이날 현장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한수원의 ‘경영현안 설명회’라고 포장된 행사장 앞에서는 한수원 노조원들이 빨간색 머리띠를 하고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사반대!”를 외쳤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야당(현 국민의힘)이 참패한 직후라 선거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시점이었다. 국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잘 짜여진 한 편의 ‘사기극’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에 박차를 가했고, 이날의 진실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국정감사 때마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한 질의가 쏟아졌고, 2019년 9월 여야 합의로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감사원은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의 조직적인 증거 은폐와 방해 등으로 2020년 10월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미흡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국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공은 정치권·시민단체 등의 고발로 검찰로 향했다. 대전지검은 지난해 6월 ‘월성 1호기 불법 가동중단 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전 대통령비서실 산업정책비서관), 백운규 한양대 교수(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정재훈 한수원 사장 등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청와대·산업부·한수원을 대표하는 탈원전 주역들이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채 사장에게는 직권남용, 업무방해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조기 폐쇄에 반대하는 한수원의 의사에 반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압박했다는 것이다. 백 교수에게는 직권남용, 업무방해 등의 혐의가 적용됐는데, 채 사장 등과 공모해 한수회 이사회 의결로 월성 1호기를 즉시 가동 중단하게 했다는 것이다. 정 사장에게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업무방해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죄목은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이 없는 것처럼 경제성 평가결과를 조작하고, 이사회를 기망해 즉시 가동 중단 의결을 이끌어 낸 다음 이를 실행해 한수원에 1481억원 상당의 손해를 가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민들의 혈세로 운영됐던 월성 1호기의 생명줄을 권력과 거짓으로 끊어버렸는데도 문재인 정권의 비호 속에 아직까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라는 사기극의 각본·연출·기획자인 청와대의 ‘몸통’도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국민들은 4년 전 이맘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진실이 궁금하다. 진실을 밝힐 주체인 검찰은 몇 달 뒤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영향으로 월성 1호기 사기극을 끝까지 수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법원이 조직적인 증거 은폐로 ‘진실 감추기’에 연연했던 사기극의 가담자들에게 죗값에 걸맞은 형량을 구형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렇다고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자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철저한 수사와 증거 확보로 국민들을 속이고 사기극을 벌인 자들에게 이 땅의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죄를 지은 자들에게 면죄부를 쥐어준다면 월성 원전 사기극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는 결코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