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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일이다. 캐나다 밴쿠버 한 맥도날드에 커피를 주문하려고 들렀다.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려 마침내 차례가 왔다.

결제하려고 신용카드를 내밀자 직원이 말했다. “앞 손님이 대신 결제해 주셨습니다.”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물었다. “왜죠?”

맥도날드 직원은 “그건 저도 모르죠”라며 싱긋 웃었다. 처음 겪은 일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순간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했다. 아무 이유 없이 나눔을 실천하는 캐나다 특유의 문화였다.

비슷한 문화는 기업에도 있다. 미국 정보기술(IT)의 심장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창업자들은 새로운 스타트업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페이잇포워드(Pay it forward) 문화다. 먼저 길을 밟은 기업가들이 창업자들이 겪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사람, 돈, 기술 등을 ‘포워드’ 해준다는 의미다.

애플의 스티브잡스도 이미 성공한 창업가 휴렛팩커드(HP)의 윌리엄 휴렛에게 도움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이런 경험이 있는 스타트업들은 성공한 뒤 또 다시 미래의 창업자를 위해 이유 없는 지원을 실천한다.

한국에도 페이잇포워드를 실천하는 기업인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 위치한 텐마인즈의 사례는 흥미롭다. 이 회사 사옥 1층에는 치킨, 피자 레스토랑이, 2층에는 카페가 입점해 있다. 겉보기엔 여느 중소기업 사옥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큰 차이가 있다. 이 사옥에 입점한 임차인들은 임대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우선 사옥 1층에는 노부부 자영업자가 있다. 이 부부는 경리단길을 휩쓸고 간 젠트리피케이션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가게를 접어야 했다. 텐마인즈는 이들에게 계약기간 2년 동안 임대료 뿐만 아니라 가게 설비 투자비를 지원한다. 수익금은 모두 임차인이 갖는다. 노부부는 이렇게 ‘60계 치킨’ 프랜차이즈 점포를 열었다. 또 치킨 가게 옆의 피자 가게는 청년 창업가가, 2층 카페는 장애인 임차인이 운영한다. 이들 역시 임대료와 설비 투자금이 공짜다.

지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00여명에 달하는 텐마인즈 직원들은 이들 임차인의 충성 고객이다. 직원들은 매달 20만~30만원 상당의 복지포인트를 받아 이곳에서 쓴다. 장승웅 텐마인즈 대표는 “나도 처음 창업할 때 겪은 어려움을 주변의 도움으로 이겨냈다”며 “이런 경험이 임차인의 자립에 도움을 주는 일을 시작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인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수레바퀴 속에 부의 흐름을 내맡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페이잇포워드’나 나눔 문화를 선뜻 기업인답지 않은 행동으로 여기는 시선도 있다. 기업이 자선 사업하는 곳이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설령 기부를 하더라도, 공익재단 설립으로 절세를 하거나 대주주의 지배구조 강화에 활용하려는 목적이 더 강했다. ‘이유 없는 나눔’이란 것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약육강식, 적자생존 만을 추구하는 ‘정글 자본주의’는 오히려 자본주의의 위기를 더 키우게 마련이다. 경제는 기업과 소비자, 임대인과 임차인, 성장 기업과 신생 기업이 공존하고 순환하는 생태계다. 모든 경제 주체가 튼튼한 연대를 이루는 것이 궁극적으론 이득이다. 이런 문화는 기업보다 소비자들이 우선 깨우치고 있다. 낯선 이를 집 안으로 들여야 하는 부담에도 중고물품을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공짜로 나눔을 하는 문화가 모바일 플랫폼 속에서 자리 잡고 있다.

국내 기업도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사회적 가치, 나눔의 가치에 눈을 뜰 때가 됐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생존과 성장, 경쟁 우위에 선다는 목표 아래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다. 국민들은 기업인을 존경하지 않으며, 기업인을 감옥에 보내고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데 열광한다. 기업인들은 반기업정서를 문제 삼지만, 그런 정서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옷깃을 여미고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은 이유 없는 나눔 행위를 회사에 손실을 끼치는 배임 행위 정도로 치부하며, 소홀히 하지 않았나. 돈을 벌 줄만 알고, 제대로 쓸 줄 모르는 기업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악덕 기업’으로 손가락질 당할지 모른다. ‘착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는 데 대한 비용에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는 곱셈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눗셈도 생각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