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로라의 새 폴더블 스마트폰 '레이저40 울트라(가칭)'의 유출 이미지. /IT 팁스터 '에반 블라스' 트위터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이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면서 ‘개척자’ 삼성전자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조악한 기술력으로 ‘삼성 베끼기’에 그치던 중국 업체들이 어느새 전체 시장 점유율의 절반가량을 가져갔고 ‘왕년의 강자’ 모토로라까지 도전장을 내밀었다. 과거 미국 기업이었던 모토로라는 현재 중국 레노버 산하 브랜드다. 삼성전자는 매년 8월 중순쯤 여는 신제품 공개 행사 ‘언팩’을 오는 7월 말로 앞당기는 안을 검토하는 등 1위 수성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28일 시장조사업체 DSCC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1~3월) 전 세계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45%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여전히 세계 1위지만, 90%에 육박했던 2020년과 비교해 점유율이 거의 반토막났다. 자국 시장을 등에 업고 성장한 중국 업체들에 삼성전자가 점유율을 뺏기는 모양새다. 2위는 오포(21%), 3위는 화웨이(15%)가 차지했다.

삼성전자의 점유율 하락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수년째 고전 중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 ‘갤럭시노트7′ 리콜 사태로 중국 관영 CCTV 등의 맹공을 받은 이후 좀처럼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중국사업혁신팀’까지 꾸리며 중국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온다. 중국 전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0%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오포(35%), 화웨이(24.9%)에 밀려 3위(18.4%)에 머물렀다.

사실 삼성전자는 폴더블 스마트폰 출시를 계기로 반등을 노려왔다. 선두주자로서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계산이었다. 중국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 역시 전체 스마트폰 시장이 침체기로 접어든 가운데 유일하게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IDC에 따르면 중국 폴더블 스마트폰 출하량은 2021년 150만대에서 지난해 330만대로 2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중국 전체 스마트폰 출하량은 3억2900만대에서 2억8600만대로 줄었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추격하며 삼성전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오포의 경우 힌지(경첩) 기술에서 삼성전자보다 우위를 인정받아 지난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2′에서 ‘파괴적 혁신상’을 수상했다. 화웨이 자회사 아너는 올해 MWC에서 삼성전자 전시장 바로 옆에 대형 부스를 마련하고, 첫 폴더블 스마트폰을 앞세워 유럽과 남미 등 전 세계로 출시를 확대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중국 스마트폰 사업 부진은 반도체 불황과 겹쳐 매출 악화로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중국에서 역대 최저 매출(5조5652억원)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미 IT 전문매체 샘모바일은 “한국 기업에 대한 중국 국민의 곱지 않은 시선이 삼성의 중국 매출 감소에 한몫하고 있다”며 “미·중 갈등 심화로 삼성이 점진적으로 중국에서 철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시장조사업체 DSCC가 최근 발표한 전 세계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 분석 자료. DSCC는 올해 1분기 전 세계 폴더블 스마트폰 출하량이 210만대를 기록한 가운데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하며 삼성전자를 추격했다고 밝혔다. 점유율은 삼성전자(45%), 오포(21%), 화웨이(15%) 순이었다. /DSCC

여기에 모토로라가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 출격을 예고하면서 삼성전자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한때 힘을 잃었던 모토로라는 2021년 미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3위를 차지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성공을 이끈 건 300달러(약 40만원) 미만 중저가 제품이었지만, 업계에서는 일찍이 ‘모토로라가 중저가 시장에서 기반을 다진 후 프리미엄 시장으로 보폭을 넓힐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2019년 처음 폴더블 스마트폰을 출시한 모토로라는 지난해 3세대 제품을 선보이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모토로라가 지난 17일(현지시각) 중국 공식 소셜미디어를 통해 새 폴더블 스마트폰 ‘레이저40(가칭)’와 ‘레이저40 울트라(가칭)’를 오는 6월 미국을 시작으로 각국에 출시하겠다고 밝히자, 미 IT 전문매체 엔가젯은 “삼성 ‘갤럭시Z폴드’ 시리즈에 대한 도전자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는데 드디어 ‘진짜 라이벌’이 나타났다”고 했다.

모토로라는 ‘삼성전자 텃밭’인 한국 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모토로라 한국 법인은 올해 3분기 출시를 목표로 준비 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토로라가 고가 스마트폰 제품을 한국에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모토로라는 그간 알뜰폰 통신사 위주로 중저가 제품만 판매해왔다. 레이저40 울트라의 출고가는 최소 1000달러(약 133만원)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언팩을 기점으로 마케팅에 사활을 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Z 폴드5′와 ‘갤럭시Z 플립5′를 공개하는 언팩을 예년보다 2주 앞당겨 7월 마지막주에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장소도 기존 미국 뉴욕, 샌프란시스코가 아닌 서울이나 부산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비용 절감은 물론 ‘2030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노력과도 맞물린다는 설명이다.

‘외산폰의 무덤’으로 불리는 한국 시장의 경우 모토로라가 삼성전자의 아성을 위협하긴 어려울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전례가 있는데 재고 부담을 떠안으면서까지 들여오는 곳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중국 제품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높은 가운데 ‘혁신’이라고 부를 만한 제품이 나와 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 않는 이상 굳이 삼성, 애플 외 제품을 사려는 국내 소비자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모토로라가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 재진출한 뒤 애플을 제외한 해외 브랜드의 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처음으로 3%대까지 올라선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