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의 한 휴대폰 매장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는 모습./뉴스1

“5G(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는 상용화 4년차를 맞았지만 여전히 반쪽짜리다. ‘LTE(4세대 이동통신) 대비 20배 빠르다’며 가입자를 유치했지만, 실제 평균 속도는 3~4배 빠른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세계 최초’ 타이틀 집착이 불완전한 5G 서비스를 부추기면서 ‘5G=사기’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20년째 통신 안테나를 생산하는 장비업체 A 대표는 통신 3사의 5G 28㎓(기가헤르츠) 할당 취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통신망은 완성된 상태로 출시되는 게 아닌 계속해서 진화하고 발전하는 서비스지만, 5G 서비스는 지난 4년간 소비자들이 느낄 변화를 주지 못 한 게 사실이다”라며 “결국 문재인 정부의 5G ‘세계 최초 상용화’ 조급증이 통신 3사의 주파수 할당 대가 6200억원을 허공에 날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라고 했다.

24일 통신 업계에 따르면 통신 3사는 5G 28㎓ 기지국 등 장비 구축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약 2070억원을 들여 5G 28㎓ 주파수를 확보했지만, 결과적으로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해 투자를 멈춘 것이다. 업계에서는 “5G 28㎓ 주파수 할당 대가 6200억원을 통신비 인하에 썼다면 가계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봤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통신사의 한 임원은 “28㎓ 주파수는 대국민 서비스 주파수인 3.5㎓(전국망 주파수)와 달리 기업용으로 제한돼 당시에도 사업성이 낮다는 평가가 많았다”라며 “4년이 지난 현재까지 기업 수요는 발생하지 않았고, 할당 대가에 따른 손실은 온전히 기업이 떠안게 됐다”라고 했다.

◇ 文정부 ‘세계 최초’ 5G 상용화 조급증에… ’5G=사기’ 인식 확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8년 통신 3사에 5G 28㎓ 주파수를 할당하면서 주파수 할당 대가(SK텔레콤 2073억원, KT 2078억원, LG유플러스 2072억원)로 6223억원을 거뒀다. 여기에 각 통신사가 1만5000대의 기지국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내용을 더했다. 공공재인 주파수를 제공했으니 전국에 최소 4만5000대 이상의 기지국을 설치하도록 의무한 것이다.

2019년 4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세계 최초 5G 상용화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 /조선DB

과기정통부의 주파수 할당 조건 자체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공재인 주파수를 개별 통신사에 5년간 독점 제공하는 만큼 전파법에 따라 할당 대가와 기지국 설치 등 할당 조건을 내세운 것이다. 통신 3사 역시 정부의 주파수 정책에 동의했기 때문에 2070억원이 넘는 할당 대가를 내고 5G 28㎓ 주파수를 받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자신감과 달리 지난 4년간 5G 28㎓ 주파수에 대한 기업의 수요는 발생하지 않았다. 세계 최초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한 정부의 초고속 경매 절차와 통신사의 무리한 투자 계획이 ‘통신 3사 28㎓ 주파수 취소’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왔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당시 5G 장관이자 실세 장관으로 불린 유영민 전 과기정통부 장관이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이끌면서 통신사들은 사업 타당성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고 28㎓ 주파수 할당에 따라간 측면이 있다”라며 “이런 모든 과정을 지켜본 소비자들이 ‘5G=사기’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 이미 6G로 눈 돌린 통신 3사… 정부 28㎓ 주파수 재할당 만지작

통신 3사는 이미 5G 28㎓ 주파수 할당 대가 비용을 회계상 손실처리한 상태다. 5G 28㎓ 주파수에 대한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해 다음 세대인 6G(6세대 이동통신)로 눈을 돌렸다. LTE보다 20배 빠른 5G 구현이 불가능해지자 2028~2030년 상용화가 예상되는 6G 기술 개발로 역량을 모으는 것이다. 통신 3사는 2025년까지 6G 관련 기술 개발이 진행되는 걸 확인한 후 본격적인 투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그럼에도 과기정통부는 5G 28㎓ 주파수 할당 취소가 5G 정책 실패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불확실성이 큰 5G 상용화를 세계 최초로 서비스한 건 사실이고, 5G 28㎓ 주파수 할당 취소는 통신 3사가 이윤을 챙기기 위해 투자를 게을리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태라는 것이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에 참여한 과기정통부 한 관계자는 “5G 28㎓ 주파수 할당은 정부 혼자만 한 게 아닌 기업과 합의해 진행한 정책이다”라며 “정책 실패, 반쪽 서비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한편 과기정통부는 통신 3사로부터 회수한 5G 28㎓ 주파수 신규 사업자에 전용 주파수 대역을 제공하는 할당 공고를 오는 6월 중에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최우혁 과기정통부 전파정책국장은 “28㎓ 주파수에 대한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유도하고, 통신 시장 경쟁 활성화를 통해 국민들이 더 높은 수준의 5G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