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산업의 ‘쌀’로 불리며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MLCC. 고성능 MLCC는 차 1대당 2만개가량이 들어간다./조선DB

가전제품과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 수요가 급감하면서 MLCC 제조업체들의 공장 가동률이 낮아지고 있다. 다만 전기차 등에 쓰이는 고성능 MLCC 수요는 탄탄한 성장세를 보여 업계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MLCC 1위 기업인 삼성전기(009150)는 올해 자동차용 MLCC 시장 생산 능력 점유율을 3배 이상 늘려 일본 업체들을 위협할 전망이다.

21일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최근 MLCC 제조사의 평균 BB(수주액 대비 출하액)율은 기준값 1보다 낮은 0.79로 집계됐다. BB율이 1보다 낮을 경우 공장에서 만든 제품의 수가 판매되는 것보다 많아 재고가 쌓였다는 의미다. MLCC 재고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통상 MLCC 업체들은 50~60일 수준의 재고를 유지했으나, 현재 재고는 90일에 육박한다.

스마트폰·PC·TV 등 IT용 MLCC 수요가 쉽게 회복되지 않자 업체들은 잇따라 가동률을 낮추고 있다. 세계 1위 MLCC 회사인 일본 무라타의 무라타 츠네오 회장은 이달 초 기자회견에서 “중국 등 세계 고급형 스마트폰 수요가 급감했다”며 “수요에 맞춰 올 1분기 공장 가동률을 80%로 낮추겠다”고 말했다. 삼성전기 역시 지난달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수요 감소에 따라 가동률을 탄력적으로 조정해 운영 중”이라고 했다. 시장은 지난해 4분기 기준 삼성전기의 MLCC 가동률이 60%를 밑도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전장(자동차 전기·전자 장비)용 MLCC 수요는 1분기에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는 올해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전기차용 MLCC 수요가 30~ 40%가량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기는 “올해 전기차 판매가 30% 이상 증가하고,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레벨2 이상의 기능을 탑재한 자동차도 올해 20%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라고 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MLCC 개수는 대당 1만8000~2만개로, 내연기관 자동차의 3배, 생활 가전제품의 4배 수준이다.

그래픽=손민균

MLCC 제조업체들은 전장용 MLCC 생산량을 늘리며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전장 제품을 미래 성장 축으로 꼽은 삼성전기의 MLCC 생산 능력 점유율은 지난해 4%에서 올해 13%로 가파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글로벌 5대 기업 중 증가 폭이 가장 크다. 삼성전기는 ADAS, ABS(제동장치), 파워트레인(동력장치)에 사용하는 다양한 전장용 MLCC를 생산하고 있다.

수요에 더해 가격까지 안정적으로 뒷받침되면서 전장용 MLCC는 삼성전기의 효자 제품이 됐다. 삼성전기는 “IT용과 달리 전장용 MLCC 출하량은 증가하고 있다”며 “ASP(평균판매가격) 역시 지난해 4분기 일부 중국 수출용 MLCC 제품의 가격이 인하됐으나, 전장용 매출 비중이 확대되면서 이전 분기와 유사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삼성전기는 올해 전장용 MLCC 생산 능력을 확대해 월평균 생산량이 30억개에 이를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1월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을 찾아 MLCC 원료 제조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시장은 전장용 MLCC 수요가 전체 MLCC 수요를 견인하면서 삼성전기의 실적이 올해 2분기부터 회복세에 돌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차유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전반적인 IT 수요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지만, 전기차와 네트워크 수요가 성장하면서 1분기부터 출하량이 개선될 전망”이라며 “삼성전기의 전장용 MLCC 매출은 40% 이상 성장하며 전기차 산업의 대표적인 수혜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완성차 업체들이 수요 진작을 위해 자동차 가격을 내리고 있어,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고 있는 MLCC 제조사들의 마진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전장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업체 간 가격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면서도 “하지만 자동차 가격 인하에 따른 MLCC 이윤 감소보다는 수요 상승 효과가 더 클 것으로 예측돼 전장 제품은 MLCC 제조사들 실적의 대들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MLCC(적층세라믹콘덴서·Multi-Layer Ceramic Capacitor)

전자제품에 탑재돼 전기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조절하고, 부품 간 전자파 간섭현상을 막아준다. 고성능 반도체에 들어오는 노이즈를 줄여 반도체가 안정적으로 동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스마트폰이나 냉장고 등 모든 전자제품의 메인 기판 위에 좁쌀처럼 박혀 있다. MLCC의 크기는 가로 1.0㎜·세로 0.5㎜(1005), 가로 0.6㎜·세로 0.3㎜(0603) 등 다양하다. 스마트폰 등 IT 기기에 탑재되는 제품은 작은 크기가 중요하다. 전기를 한 번에 얼마나 많이 저장할 수 있는지에 따라 제품 성능이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