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장쑤성(江蘇省) 우시(無錫)에 있는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D램 생산 공장 내부.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D램의 절반 이상이 우시 공장에서 생산된다. /SK하이닉스 제공

미국이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제재 수위를 더 높여나가면서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의 중국 생산거점인 시안, 우시 공장의 생산능력 감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회사들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네덜란드 정부가 미국의 중국 제재에 동참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도 생산공정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차질을 빚게 됐다. 생산성을 위해 웨이퍼(반도체 원판) 투입량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7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부터 최대 D램 생산거점 중 하나인 중국 우시 공장의 웨이퍼 투입량을 올해 연말까지 월평균 16만장 이하로 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보다 약 10% 수준 투입량을 줄인 것이다. 여기에 최근 일본, 네덜란드가 미국의 중국 반도체 제재에 참여하면서 장비 수급이 더 어려워져 투입량 감소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 공장 역시 낸드플래시 생산에 비상이 걸렸다. 낸드플래시 생산의 마더팹(Mother Fab·최신공정 우선 적용 공장)인 평택 공장과 시안 공장의 기술력 격차가 벌어지면서, 시안 공장 운영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단대 이상의 최첨단 3D 낸드 기술과 공정이 가장 먼저 도입되는 마더팹의 기술이 시안 공장에는 전파되기 힘들어졌다는 의미다. 이는 중국 공장의 기술적 고립을 의미한다.

앞서 삼성전자는 최근 열린 지난해 4분기 경영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인위적 감산을 부정했지만 중국 내 반도체 공장의 공정 업그레이드가 막히면서 자연 감산 효과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낸드 가격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내내 하락추세인데 시안 공장의 100단대 3D 낸드로는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에 생산성 경쟁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시안 공장 비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짤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사 관계자 역시 중국에 대한 네덜란드나 일본의 반도체 핵심 장비 수출이 막히면서 국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중국 내 증설 투자나 장비 업그레이드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점을 인정했다. 삼성 관계자는 “현재 시안 공장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태다”라며 “다만 지정학적 문제로 신규 설비 투입이나 신공정을 적용하는 문제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관계자가 언급한 지정학적 문제는 두 기업의 중국 공장 설비 투자가 정치적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 정부는 이미 인도를 포함한 대중 연합 성격의 인도 태평양 경제 연합(IPEF)에 가입한 상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중국에 신규 설비투자를 단행할 경우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약속하고 받기로 한 보조금 대상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앞서 삼성전자는 컨퍼런스콜에서 생산라인 유지보수 강화와 설비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으며 설비투자 내 연구개발(R&D) 비중을 늘린다는 입장을 전했다. 업계에선 이를 사실상 감산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삼성에 정통한 관계자는 “인위적 감산은 고객사 입장에서 납품 단가 인상을 의미하기 때문에 공연히 밝힐 순 없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행정부는 지난해 10월 중국이 첨단 반도체를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겠다며 18㎚(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 이하 로직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통제했다. 이어 세계 5대 반도체 장비 업체가 있는 일본과 네덜란드에 동참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회사 ASML의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수출을 이미 금지한 데 이어 일부 심자외선(DUV) 노광 장비도 제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1년 기준 ASML은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에 이어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 점유율 2위이며, 일본 최대 반도체 장비기업인 도쿄일렉트론이 3위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