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으로 세상을 바꾼 것처럼 외식업이 로봇 때문에 편해지고 있다. 로봇이 힘든 일을 대신하면서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가 낮아졌다. 거창하게 말하면 홍익인간 정신을 로봇이 실천하고 있다.”

인텔을 거쳐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 중인 40대 한인 남성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순두부 가게를 열었다. 식당 하나 있으면 친구들과 편하게 식사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돈도 추가로 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결정이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사소한 의견 차이로 주방장이 나갔고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한 종업원이 이탈하면서 식당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식당 일은 중노동에 가까웠다. 음식을 나르고 정리하는 단순한 업무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는 구글을 나와 서빙 로봇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는 로봇이 홍익인간(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의 길을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표현이 거창할 뿐 결국은 로봇으로 우리 삶을 더 편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난 26일 서울 성동구 베어로보틱스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하 대표는 “당장은 서빙 로봇을 사용하는 식당 사장님과 종업원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라고 했다.

베어로보틱스는 지난 2017년 하 대표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로봇회사다. 현재 서빙 로봇인 ‘서비’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 방역 로봇인 서비 에어와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층간 이동 배달 로봇 서비 리프트도 내놨다.

베어로보틱스 서비 소개

하 대표가 처음부터 로봇을 만든 건 아니다.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온 소프트웨어 개발자였다.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 오스틴대학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대학 부설연구소와 인텔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는 구글에 입사해 자바 개발자로 6년을 근무했는데, 일이 익숙해질 때쯤 그는 순두부 식당을 열었다. 추가 소득을 위해 투자 개념으로 식당을 차린 것이다. 하 대표는 순두붓집을 운영하면서 단순노동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됐다. 서빙 로봇을 만들면 종업원들의 근무 강도를 낮춰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도 이때다.

하 대표는 베어로보틱스에 대해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모빌리티 플랫폼을 만드는 회사다”라고 소개했다. 식당에서 서빙 로봇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 만큼 로봇 플랫폼을 기반으로 다양한 로봇 제품 개발 중이라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그가 말하는 로봇 플랫폼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이 결합해 물건을 스스로 나를 수 있고, 로봇을 관제하는 클라우드와 자율주행 알고리즘도 갖춰야 한다. 베어로보틱스는 단순히 로봇 제작을 넘어 클라우드와 자율주행, 관제 서비스까지 모두 서비스하고 있다.

베어로보틱스가 만든 서빙 로봇의 이름은 ‘서비’다. 그는 식당을 운영한 경험으로 서비의 위생과 안전을 높였다. 로봇 부품 사이에 틈을 없애 바퀴벌레나 곤충이 서식하지 못하도록 했고, 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해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서비는 현재 국내와 일본, 미국에서 판매 중이다. 국내에서는 KT가 월 65만원에 서비를 대여해주고 있고, 일본에서는 소프트뱅크로보틱스가 판매 중이다. 미국에서는 베어로보틱스가 직접 식당과 계약을 맺고 판매하고 있다.

하 대표는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서비 리프트가 노동 혁신을 이끌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서비 리프트는 배달 기사들이 공동 현관문에 놔둔 음식을 집 앞까지 배송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라며 “배달 기사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지고, 주민들은 모르는 사람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앞까지 오지 않아 더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라고 했다. 이어 “아파트 단지에 서비 리프트를 설치할 경우 빨래를 빨래방에 전달하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등 호텔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라며 “노동 환경을 개선해 사람을 더 평등하게 만드는 게 로봇이 할 일이라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베어로보틱스의 서빙 로봇은 현재 미국 40개 주에 보급된 상태다. 출시 5년 만에 1만대가 팔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하 대표는 “여전히 타일 바닥에서 국물을 흘리지 않고 갈 수 있는지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라며 “주행 알고리즘과 로봇 인식 시스템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며, 기술적인 면에서는 우리가 가장 앞서 있다고 자신한다”라고 했다.

하 대표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내년 중으로 추가 투자도 유치할 생각이다. 베어로보틱스는 지난해 3월 로봇 스타트업 중 최대 규모임 1000억원의 시리즈 B 투자를 받았다. 해당 투자로 베어로보틱스의 기업가치가 6000억원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 대표는 “안전자금 확보를 위한 몇백억원 단위의 투자를 내년 중으로 유치할 계획이다”라며 “인재 채용과 글로벌 영업에 필요한 운영 자금에 가깝다”라고 했다.

상장이나 인수합병(M&A)에 대해서도 언제나 열려있다는 게 하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모든 기준은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지에 달려 있다”라며 “로봇 사업이 성장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상장이나 M&A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고 했다. 하 대표는 “전 세계 로봇 시장에서도 애플과 같은 혁신 기업이 필요하다”라며 “누군가 못하면 우리가 해야 하는데, 아직은 잘 안 보인다”라고 했다.

하 대표는 해외 시장 진출을 앞둔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서 비즈니스가 어려워 미국으로 가려는 사례가 많은데, 미국에서 일을 처음부터 시작한 게 아니면 한국에서 일단 성장하는 게 더 좋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성공한 후 한국적인 모델을 잘 키우는 게 어설프게 해외에 먼저 진출하는 것보다 더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

하 대표는 “베어로보틱스를 글로벌 로봇 서비스 회사로 키우는 동시에 로봇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라며 “구체적으로 식당 사장님과 종업원, 음식을 배달하는 배달 기사들이 로봇 때문에 편해졌다고 이야기하는 그날까지 더욱 노력하겠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