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12세대 코어 프로세서 '엘더레이크'. /인텔 제공

올해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 인텔과 AMD의 맞대결은 현재까지 인텔이 내놓은 12세대, 13세대 프로세서의 판정승으로 막을 내리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왕의 귀환’을 언급할 정도다. 인텔보다 두 세대 가까이 앞선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의 최신 공정을 활용해 CPU를 내놓은 AMD는 애매한 성능 향상과 높은 가격으로 인텔에 밀리고 있다는 평가다.

반도체업계에서는 미세공정이 고도화할수록 TSMC의 파운드리 서비스가 고비용·저효율의 양상을 띄기 시작하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경쟁자인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실상 5㎚ 이하 최선단 공정을 도입한 회사가 삼성전자와 TSMC 두 회사뿐인 상황에서 삼성이 TSMC의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6일 인텔, AMD 관계자 등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인텔의 12세대, 13세대 코어 프로세서 판매량이 눈에 띄는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아직 공식적인 하반기 시장점유율 통계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AMD가 최근 발표한 3분기 실적에서 소비자용 CPU를 판매하는 클라이언트 부문 매출이 7억달러(약 8900억원) 이상 감소하며 인텔에 비해 가파른 하락세를 드러냈다.

눈여겨볼 점은 올해 양사의 경쟁 구도에서 AMD 최대의 무기나 다름없던 TSMC의 최신 공정이 비용 대비 효율성 측면에서 이렇다할 장점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AMD 관계자는 “미세공정 고도화에 따른 성능 향상이 서서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보여진다”며 “이제는 최첨단 공정보다는 CPU의 설계와 캐시메모리, 최적화 등이 칩 성능을 끌어올리는데 더 중요한 요소가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10월 인텔이 공개한 코어 i9-13900K와 코어 i5-13600K 등 총 6종은 벤치마크(성능측정) 결과에서 한 달 앞서 나온 경쟁사 AMD의 라이젠 7000 시리즈를 넘어서는 성능을 보이면서 호평을 받았다. 인텔은 기존의 10㎚(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에서 제품을 생산했고, AMD는 TSMC의 5㎚ 공정으로 생산했다. 두 세대나 앞서있는 TSMC의 공정을 사용하고도 칩의 가격 대비 성능 측면에서 인텔에 밀리게 된 것이다.

대만 반도체 제조사 TSMC 본사. /로이터 연합뉴스

올해 5㎚, 4㎚ 공정을 앞세워 AMD, 엔비디아, 퀄컴 등 ‘큰 손’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회사)의 물량을 독점했던 TSMC가 잇달아 생산가격을 올리면서 팹리스들의 가격 경쟁력을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서 TSMC는 내년부터 3㎚ 공정 12인치 웨이퍼의 단가로 2만달러(약 2700만원)를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5㎚ 공정 웨이퍼 단가 1만6000달러(한화 약 2150만원)보다 25% 인상된 가격이다.

반도체 미세공정 난도가 높아질수록 설계부터 생산 공정, 마케팅 등 모든 과정을 수직계열화해 직접 수행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통상 설계와 생산을 분리해 설계와 판매만 담당하는 팹리스 모델은 파운드리 회사의 생산단가가 높아질수록 불리하다는 설명이다.

반도체업계 전문가는 “팹리스와 파운드리는 생산단가를 흥정하며 각사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의 타협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현재는 TSMC 독주 체제나 다름 없어 가격을 타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TSMC의 가격 정책이 팹리스에 비효율성을 초래할 경우 경쟁자인 삼성에 눈이 쏠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했다. 그는 “다만 이는 삼성이 TSMC와 대등한 수준의 생산성과 칩 성능을 확보했을 때의 이야기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