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가운데) /뉴스1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기업의 규제 해소를 위해 추진하는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샌드박스’ 실증사업 예산 지원이 1건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예산 실집행률도 33%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도 63억원의 예산이 편성됐지만 23억원(37%)을 사용하지 못하고 불용(不用) 처리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9월 규제샌드박스 시행 성과를 발표하는 등 홍보전을 펼쳤지만, 실상은 부실 운영 논란이 나오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모래 놀이터처럼 기업들이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는 제도다. 실증 특례를 받으면 현행법상 금지되는 경우라도 규제를 유예하고 일정 기간 제한 구역에서 테스트할 수 있다.

9일 조선비즈가 입수한 ‘2023년 예산안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부실한 규제 샌드박스 사업 관리로 예결위로부터 “집행률 제고를 위한 철저한 사업관리가 필요하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실제 올해 규제 샌드박스 실증사업 예산은 58억3300만원이지만, 집행액은 19억2900만원으로 실행률은 33.1%에 그쳤다. 2019년과 2020년에는 83.7%, 84.9%였지만 2021년 집행률이 63%로 떨어졌다.

지원 건수를 놓고 보면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올해 총 25.8개 기업이 실증사업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예산을 마련했지만, 과기정통부가 실제 지원한 기업은 1곳에 불과하다. 지난해 30개 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을 준비했지만, 실지원 건수는 11건에 그쳤다.

예결위는 “(과기정통부의) ICT 규제 샌드박스 사업의 경우, 실집행률 저조가 반복되고 있어 2023년 집행률 제고를 위해 사업 관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료=국회 예산결산위원회

규제샌드박스는 규제 유무를 부처가 확인해 기업에 알려주는 ‘신속처리’, 기업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즉시 시장에 출시하는 ‘임시허가’,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시험·검증을 임시로 허용해주는 ‘실증특례’로 구분된다. 과기정통부는 ICT 규제 샌드박스를 담당하고 있다. 내년에도 과기정통부는 올해와 같은 58억3300만원의 예산을 편성받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과기정통부는 “ICT 규제 샌드박스 제도 시행 후 2년 8개월 만에 총 156건의 과제를 승인(임시허가 59건, 실증 특례 97건)했다”라며 “승인기업은 906억원의 매출액, 1705억원의 설비·투자유치, 2576명의 신규고용 등의 경제적 성과를 냈다”고 홍보했다.

사실상 규제샌드박스에 참여한 기업 대부분이 실증 특례 자격만 얻었을 뿐 실증을 위한 예산 지원은 받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실증 사업에 지정될 경우, 기업당 최대 1억2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ICT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생색을 낼 수 있는 규제만 풀고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결정을 미루다 보니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라며 “심의 기간도 최장 3년에 달하는 등 지나치게 길어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올해 대선이 있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 샌드박스 심의 회의가 늦어진 측면이 있다”라며 “또 규제 샌드박스 신청 기업의 스케줄, 대기업과 중복 기업 제외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