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마블이 마블코믹스의 콘텐츠 IP(지식재산권)을 활용해 만든 모바일 역할수행게임(RPG) ‘마블 퓨처 레볼루션’. /넷마블

국내 엔터테인먼트,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차별화된 콘텐츠를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창작자를 육성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콘텐츠 지식재산권(IP) 사업을 확장함에 따라 입체적 세계관 구성을 할 수 있는 창작자에 대한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CJ ENM은 콘텐츠 기획부터 제작, 편성, 에이전시 연결까지 창작자의 성장 전 과정을 지원하는 오펜(O’PEN) 프로젝트를 매년 진행 중이다. 지원 대상도 2017년 단막극, 영화 각본 작가에서 2018년 작곡가, 2020년 시리즈, 숏폼 영상 각본 작가로 확대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배출한 창작자 273명 중에는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각본을 쓴 신하은 작가도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각각 웹툰, 웹소설 자회사를 통해 주기적으로 공모전을 열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달 네이버웹툰에서 9년간 연재된 공포 웹툰 ‘기기괴괴 월드’를 자사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재현했다. 카카오는 2018년 완결된 웹툰 ‘사내맞선’을 소재로 한 게임 출시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완결된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의 이미지는 대체불가토큰(NFT)화해 판매했다.

최근 드라마로 영상화된 네이버웹툰의 콘텐츠 IP. /네이버

콘텐츠 IP는 원천 콘텐츠를 확장해 파생 사업을 가능케 하는 일련의 지식재산권 묶음을 일컫는다. 세계관을 무한대로 늘려 팬덤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웹툰 또는 웹소설이 원작인 드라마, 영화가 대표적인 예다.

콘텐츠 IP 사업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증명한 기업은 디즈니다. 디즈니는 영화 ‘아이언맨 1′이 흥행한 이듬해인 2009년 마블스튜디오의 모회사 마블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고, 2010년 마블스튜디오 내에 TV 부문을 설치했다. 이후 차례차례 마블코믹스 캐릭터들의 판권을 사들인 디즈니는 2019년 자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를 출시하고 각 캐릭터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 드라마 시리즈를 찍어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을 거치면서 프리퀄(원작보다 시간상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 스핀오프(파생 이야기) 등 재가공된 콘텐츠에 대한 대중이 관심이 높아졌다고 분석한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플랫폼 간 경계가 흐려진 오늘날, 스크린과 스크린을 넘나드는 스토리텔링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며 “관객들은 이제 이야기 속 등장인물을 ‘나와 함께 삶을 이어가는 존재’로 인식한다. 웹툰, 웹소설, 드라마, 영화, 예능 모든 플랫폼에서 동일한 세계관을 경험하길 원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오펜센터 내부. 오펜센터는 CJ ENM의 창작자 육성 프로젝트 오펜(O’PEN) 참가자들이 각본 집필, 작곡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박수현 기자

대중이 세계관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있을 법한’ 세상을 상상하는 데서 느끼는 재미다. 이는 2019년 EBS 캐릭터 ‘펭수’로 증명된 바 있다. EBS가 펭수를 통해 2019년 11월부터 2020년 7월까지 광고 모델 및 협찬(28억3000만원), 이미지 라이선스(14억2000만원), 라이선스 상품 판매(58억8000만원) 등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총 101억3000만원이다.

업계는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현재, 안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종민 CJ ENM IP개발센터장은 “프랑스는 1950년대 누벨바그 운동을 이끌며 ‘영화 종주국’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며 “참신한 콘텐츠를 찾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 센터장은 “반면 한국 기업은 계속해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며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여러 플랫폼이 협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