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디지털플랫폼TF 팀장이 지난달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에서 디지털 플랫폼정부 구현 중점 추진과제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총괄 부처를 놓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행정안전부의 기싸움이 치열하다. 과기정통부는 플랫폼 설계를 위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5세대 이동통신(5G), 클라우드 등 정보통신기술(ICT)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행안부는 공공 데이터를 관리하고 있고 그간 전자정부 사업을 진행해 온 만큼 행안부가 담당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24일 ICT업계와 정부 부처 등에 따르면, 디지털 플랫폼 정부 TF는 과기정통부, 행안부, 기획재정부 등에서 과장급 이상의 인력을 파견 받고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TF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 민·관 합동위원회 출범을 준비하는 상황으로 ▲조직구성 ▲사무국 규모 ▲업무 추진일정 등을 조율하는 단계다. TF는 다음 달 10일 활동 기한이 종료되면 디지털 플랫폼 정부 준비단으로 이름을 바꿔, 위원회 설립 전까지 업무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 공공데이터에 ICT 녹이겠다는 과기정통부

디지털 플랫폼 정부 TF에서 1차 주도권을 가진 것은 과기정통부다. 지난달 2일 안철수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위원장은 디지털 플랫폼 정부 추진방향을 발표하면서 ‘과기정통부 장관이 컨트롤타워를 맡는 게 낫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통신사, 포털, 클라우드 등 국내 ICT 업계를 관장하고 있는 과기정통부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 정부 위원회가 출범하고 예산이 집행될 경우, 국내 ICT 업체들도 트랙레코드(실적)를 쌓는데 좋은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클라우드 시장은 아마존웹서비스(AWS)가 50%,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애저(Azure)가 30%를 점유하고 있다. 여기에 오라클 등을 합치면 사실상 90%에 가까운 점유율을 외국 업체들이 독식하고 있다. KT(030200), 네이버, 카카오(035720) 등도 클라우드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는 만큼, 디지털 정부 플랫폼 사업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 11일 취임한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미 플랫폼 정부 사업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 장관은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축·운영에서 과기정통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지난 3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선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컨트롤타워 문제를 (대통령께) 열심히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과기정통부 장관이 나서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래픽=이은현

다만, 본격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과기정통부 2차관 인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 장관이 반도체 전문가인 만큼 통신과 클라우드,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2차관의 ICT 전문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플랫폼 사업에 대한 행안부의 의지도 만만치 않다. 지난 13일 취임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민이 요구하기 전에 편리하고 업그레이드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구현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선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디지털 정부 서비스를 한데 모아둔 ‘정부24′는 행안부의 소관이다. 정부의 공공데이터가 저장된 정부통합전산센터도 행안부가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데이터를 모으는 기능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는 AI로 개인 상황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기술을 고도화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 행안부로서는 ICT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최대 단점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조직 구성에 대한 논의가 1차 목표지만, 아직 어느 부처가 총괄을 맡을지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어둔 상황이 아니다”라며 “위원회 구성이 약 한 달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이는데, 6월 말쯤에는 윤곽이 드러 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 “대통령 직속, 힘 있는 리더십 필요”

디지털 플랫폼 정부 위원회(가칭)는 대통령 직속 기구로 신설될 가능성이 크다. 한때 총리실 산하에 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정부가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축을 국정과제로 발표한 만큼 사업의 중요성에 따라 대통령 직속 기구로 둬야 한다는 의견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달 5일 디지털 플랫폼 정부 사업과 관련해 “윤석열 당선인의 관심이 커 특별위원회 또는 대통령 직속 기구까지도 논의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왼쪽),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 /뉴스1

또 전문가들은 디지털 플랫폼 정부 위원장을 장관급 이상이 맡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만큼, 빠른 실행을 위해서는 위원회에 힘이 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위원회, 국정기획자문위원회, 4차산업혁명위원회 등 지난 5년간 500개가 넘는 위원회를 운영했지만, 성과가 미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각 부처와 업무가 중복되면서 ‘옥상옥’ 구조라는 비판이 나왔고, 특히 위원회에 각 부처 국·과장들이 파견을 나가면서 인사적체 탈출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 관계자는 “과거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면 업무 추진이 빠를 것으로 예상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힘이 없는 위원회가 돼버렸다”며 “디지털 플랫폼 정부 사업이 여러 부처와 기업 등 많은 이해관계자가 함께 모여 진행해야 하는 만큼, 힘이 실리기 위해서는 대통령에게 현안을 직접 설명하고 소통할 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