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설계회사(팹리스) 퀄컴이 삼성전자의 주요 매출처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면서 두 회사의 끈끈한 관계가 부각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퀄컴은 서로에게 고객이면서 동시에 협력사인 물고 물리는 관계로, 업계는 삼성전자와 퀄컴 동맹이 애플·TSMC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가 될 것으로 분석한다.

20일 삼성전자 분기보고서(2022년 3월)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회사의 주요 매출처는 애플(IT기업)과 베스트바이(가전유통사), 도이치텔레콤(통신사), 퀄컴, 슈프림일렉트로닉스 등이다. 이 회사들의 매출액은 삼성전자 1분기 전체 매출액의 14%를 차지했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 사장이 지난 2월 '갤럭시 S22 울트라'(왼쪽)와 '갤럭시 S22'를 소개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퀄컴은 미국 통신사인 버라이즌을 밀어내고 삼성전자 주요 매출처에 처음 포함됐다. 퀄컴의 최신 모바일 칩인 스냅드래곤 8 1세대를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생산한 덕분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퀄컴의 최신 5세대 이동통신(5G) 모뎀칩인 스냅드래곤 X65도 생산하는데, 이 역시 1분기 매출에 잡힌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퀄컴은 삼성전자의 2분기 주요 매출처에서 다시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삼성 파운드리의 4㎚(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생산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불거진 데 따라 퀄컴이 해당 공정에서 만들려던 차세대 칩의 생산처를 TSMC로 옮긴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4㎚ 공정 수율은 공정 초기에는 지연됐으나, 현재는 계획한 수율 구간에 진입했다”고 했다.

업계는 삼성 파운드리에 다소 문제가 있긴 하지만, 삼성전자와 퀄컴의 관계는 여전히 공고하다고 본다.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이 퀄컴인 것처럼 퀄컴의 가장 큰 고객사도 삼성전자이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수율 문제로 이 관계가 깨질 우려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전자의 주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 다수에는 퀄컴 칩이 공급되고 있고, 대부분은 수익률이 높은 플래그십(최상위) 모델이다. 가장 최근에 출시된 갤럭시S22 시리즈와 갤럭시탭S8 시리즈에는 스냅드래곤 8 1세대가 장착된다. 또 삼성 스마트폰의 볼륨모델인 A시리즈(A23·A73)에도 스냅드래곤 680과 778G가 사용된다. 인도 시장 주력 모델인 갤럭시M23에는 퀄컴 스냅드래곤 750G가 쓰인다. 올해 출시가 예정되는 폴더블폰 갤럭시Z시리즈에도 퀄컴 칩 적용이 유력하다.

애플이 아이폰13 시리즈와 2세대 아이폰 SE 등에 장착하고 있는 A15 바이오닉 칩셋 개념도. /애플 제공

삼성전자는 지난해 2억8500만대 판매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출하량 기준)를 기록했다. 또 태블릿PC도 3000만대를 판매, 애플의 뒤를 이었다. 퀄컴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고객사라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퀄컴은 한국을 중국, 북미와 함께 주요 시장으로 분류한다.

삼성전자와 퀄컴의 관계는 통신칩 시장 구도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퀄컴은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의 삼성전자와 iOS(아이폰 운영체제) 진영의 애플에 모두 통신칩을 납품해 왔는데, 애플이 2023년부터 자체 통신칩을 개발해 쓰기로 했다. 퀄컴 입장에서는 iOS 시장을 통째로 잃게 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드로이드 진영의 대표회사이자, 애플의 대항마인 삼성전자와의 관계가 틀어진다는 것은 퀄컴이 바라는 그림은 아니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물론 변수는 있다. 삼성전자가 애플처럼 갤럭시 기기에 들어가는 전용 칩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려고 하는 것이다. 모바일 칩 최다 판매처 중 하나가 없어질 가능성이 있는 퀄컴과 삼성전자와의 결속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이 경우에도 5G 모뎀칩 경쟁력을 갖고 있는 퀄컴이 주요 고객사로 삼성전자를 계속 유지할 여지가 충분하다.

업계 관계자는 “퀄컴의 차세대 모바일 칩 생산처의 변경으로 삼성전자와 퀄컴의 관계가 틀어질 것이라는 지금의 전망은 두 회사의 관계를 봤을 때는 맞지 않는다”라며 “오히려 사이가 가까워지고 있는 애플과 TSMC에 대항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퀄컴의 물고 물리는 관계가 더 돈독해질 가능성이 더 크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