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디스플레이가 올해 안으로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을 종료하는 데 따라 삼성전자 TV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그간 삼성디스플레이를 지렛대 삼아 중국 업체와의 LCD 공급 가격협상력을 유지해 왔는데, 앞으로는 이 작전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 주력 제품 대부분이 LCD TV인 만큼,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의 납품가 관련 입김이 거세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0일 삼성디스플레이와 전자 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퀀텀닷(QD)디스플레이 사업화와 함께 LCD 사업을 접는다. 이미 스마트폰 등에 사용하는 중소형 디스플레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전환이 끝난 상태고, TV에 필요한 대형 LCD 정도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업계는 삼성디스플레이가 늦어도 3분기 안에는 LCD 사업 철수를 공식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권영 삼성디스플레이 부사장은 지난달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LCD 사업은 예정대로 종료할 것이다”라고 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애초 지난 2020년 말 LCD 사업을 끝내려고 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의 물량 공세가 시작되면서 패널 공급 가격이 현저히 떨어졌고, 적자가 누적된 탓이다. 이 때문에 2020년 중국 쑤저우 LCD 공장을 중국 가전업체 TCL의 디스플레이 자회사인 CSOT에 매각하고, 국내 공장도 감산에 들어갔다.
그러나 모기업인 삼성전자가 중국 업체 공급 비중 확대에 따라 가격 협상력이 떨어질 것을 걱정했고, 삼성디스플레이 측에 생산 유지를 요청했다. 중국 업체가 과도하게 패널 가격을 올리려고 하면 삼성디스플레이 공급 비중을 높이겠다는 식으로 가격 협상에 나섰던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의 LCD 사업은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판매 제품의 절대다수를 LCD TV로 채우고 있다. 매출의 상당수가 나오는 QLED, 네오QLED 제품군이 모두 LCD TV다. 삼성디스플레이의 LCD 철수에 따라 삼성전자는 패널 공급의 9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LCD 패널 가격이 내림세에 있어 당분간 공급가격 협상에서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보다는 삼성전자가 협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시장 수요가 줄고 있음에도 중국 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는 데 있다. 이는 2010년대 후반 있었던 중국 주도의 패널 가격 폭락과 비슷한 상황으로, 중국 측이 다시 패널 공급가를 높여가며 TV 제조사를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디스플레이라는 든든한 우군 없이 중국 업체를 상대해야 하는 셈이다. 국내 기업인 LG디스플레이에서도 TV용 LCD 패널을 공급받지만, 수량이 전체 물량의 1~2%로 많지 않다. 또 경쟁사라는 점에서 100% 우호적 관계로는 볼 수 없다.
삼성전자는 LCD 비중을 지속적으로 낮추면서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전환하는 일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 QD-OLED TV의 경우 북미와 유럽에서는 이미 소비자 인도까지 끝나 사용 후기 등이 각종 커뮤니티 등에 올라오고 있으나, 국내 출시는 요원하다. 1분기 실적 발표회에서도 삼성디스플레이는 QD디스플레이를 적극적으로 알린 반면에 삼성전자는 이미 판매 중인 QD-OLED TV에 대해 어떤 언급도 없었다. 실적 발표회는 국내외 투자 시장에 회사의 실적을 비롯해 방향성, 계획, 판매 전략 등을 밝히는 자리로, 지금 판매 중인 차세대 디스플레이 TV에 대한 의도적인 언급 누락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OLED 패널 수량 확보를 위해 LG디스플레이와 공급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지만, 공급가격 이견으로 협상에 진전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는 삼성전자 TV 전략이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에 의해 휘둘릴 여지가 큰 것으로 본다.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중국 CSOT, AUO, BOE 등에 패널 매입비로 지불한 금액은 2조4888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 1조8624억원과 비교해 6000억원쯤 늘었다. 매출에서 패널 매입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4.3%에서 올해 16.1%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TV 등을 담당하는 DX(옛 CE)부문의 영업이익은 1조12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떨어지는 수익성을 고급 제품인 QLED와 네오 QLED로 만회하겠다는 전략이지만, 패널 공급가 협상을 주도하지 못한다면 사업 성과는 떨어지기 마련이다”라며 “지금 판매 중인 QD-OLED TV도 실적발표회에서 밝히지 않을 정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