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최고경영자(CEO). /로이터 연합뉴스

국내외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웹 3.0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인프라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구글은 클라우드 사업부 내에 웹 3.0 팀을 신설했고, 삼성전자는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메타, 트위터는 웹 3.0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의 활용처를 대체불가능토큰(NFT), 메타버스 등으로도 늘리고 있다.

웹 3.0은 전 세계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데이터를 분산 저장하고, 나아가 직접 제작한 콘텐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끔 한다는 개념으로 주목받고 있다. 구글·메타·트위터 등 플랫폼 기업이 통제하는 현재의 웹 환경(웹 2.0)에서는 개인이 만든 콘텐츠라 해도 플랫폼에 업로드되는 즉시 ▲기업 중앙 서버에 저장되고 ▲기업 내부 정책의 통제를 받으며 ▲기업과 수익을 배분하도록 돼 있다.

11일 미 경제전문매체 CNBC에 따르면 구글은 지난 6일 웹 3.0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용 백엔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팀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블록체인 내 노드의 구축과 실행을 간소화하고, 개발자와 이용자가 모두 블록체인 데이터를 손쉽게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 소프트웨어를 만든다는 것이다. 시티그룹 임원 출신인 제임스 트로먼스 구글 클라우드 최고기술경영자(CTO)가 팀을 이끌며, 내부 웹 3.0 작업에 참여했거나 웹 3.0에 관심을 두는 직원들이 합류할 예정이다.

아미트 자베리 구글 클라우드 부사장은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이 웹 3.0 개발자들의 첫 번째 선택지가 되게 하자는 취지에서 팀을 신설했다”며 “세상은 여전히 웹 3.0이란 개념을 낯설어하지만, 많은 고객이 웹 3.0과 암호화폐 기술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의 큰손들은 일찌감치 웹 3.0 인프라에 투자해왔다. 지난 2월에는 라이트스피드 벤처스, 실버레이크 등 유명 투자사들이 알케미에 2억달러(약 2547억원)를 추가로 투자해 화제가 됐다. 알케미는 이더리움과 다른 블록체인 네트워크들에서 디앱(DApp·탈중앙 앱)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는 회사다. 현재 추산 기업가치는 102억달러(12조9917억원)이며, 데카콘(시가총액 100억달러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분류된다.

삼성전자도 최근 스타트업 투자 자회사인 삼성넥스트를 통해 미국 미스틴랩스에 투자했다. 미스틴랩스는 메타의 가상자산 지갑 ‘노비’를 만든 개발자들이 모여 창업한 곳으로, 웹 3.0 인프라 개발에 나서고 있다. 메타·인스타그램·에어비앤비 등의 초기 투자자로 유명한 안드레센 호로위츠가 시리즈A 투자를 주도했으며,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벤처 투자사 코인베이스 벤처스 등이 참여해 총 3600만달러(458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메타가 지난 9일(현지 시각) 대체불가능토큰(NFT)을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조만간 테스트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스타그램

플랫폼 기업들은 웹 3.0 인프라 개발 외에도 블록체인을 NFT, 메타버스 등과 연계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 블록체인 전문기업 대퍼랩스와 손잡고 NFT를 포함한 대퍼랩스의 각종 서비스 개발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또 구글 클라우드는 대퍼랩스의 블록체인 네트워크인 ‘플로우’의 운영자로 합류했다.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월 2021년 4분기 실적발표 컨버런스콜에서 “블록체인은 응용처가 광범위한 흥미롭고 강력한 기술이다”라며 “블록체인 생태계에 기여하고 가치를 더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한 달 만인 지난 3월에는 미래 산업 발굴을 담당하는 구글랩스 산하에 블록체인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메타는 메타버스 플랫폼 ‘호라이즌 월드’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경제 생태계 조성을 도모하고 있다. 9일에는 산하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의 이용자들이 NFT를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테스트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메타는 페이스북에도 유사한 기능을 출시할 예정이다. 트위터는 지난 1월부터 유료 구독 서비스인 ‘블루’ 이용자를 대상으로 동일한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네이버는 일본 라인을 통해 2018년 자체 블록체인 네트워크 ‘라인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링크’를 출시했다. 올해 링크를 추가 상장하고 실사용처를 늘린다. 카카오는 해외 블록체인 사업법인 크러스트를 통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다. 자회사인 그라운드X에서는 가상자산 지갑 및 NFT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웹 3.0을 둘러싼 업계의 기대감을 놓고 일각에서는 지금의 상황이 1990년대 닷컴버블 이후와 닮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닷컴버블이 남긴 광케이블 등 인프라가 오늘날 빅테크로 성장한 기업을 먹여 살렸던 것처럼, 암호화폐 열풍의 바탕이었던 블록체인이 앞으로 IT 기업들의 주요 먹거리 역할을 할 것이란 예측이다. 미국 자산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은 지난해 3분기 기준 웹 3.0 분야에 몰린 투자 자금이 18억달러(2조2927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실리콘밸리의 대형 벤처 투자자들이 베팅하고 있는 곳을 보면 암호화폐 유행의 이면에 있는 새로운 인터넷에 대한 수요를 알 수 있다”며 “탈중앙화된 네트워크가 온라인 생태계에 없던 틀을 제시한다면 블록체인 인프라의 필요성은 계속해서 유효할 것이다”라고 했다.

다만 웹 3.0이 막연한 청사진만 있을 뿐 실체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웹 3.0은 마케팅 용어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잭 도시 트위터 창업자도 “당신들은 웹 3.0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며 벤처 자본이 대규모로 투자를 단행하는 만큼 이들이 누릴 선점 효과를 무시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비판적인 시각을 견제하고 있다. 머스크 CEO와 도시 창업자의 주장과 달리 웹 3.0은 모든 코드 및 데이터가 대중에게 공개돼 있어 벤처캐피털(VC)이 소유권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웹 3.0 기반 데이터 저장 및 개인정보보호 기업인 아르카나 네트워크의 아라빈드 쿠마르 공동설립자는 “VC가 51% 이상의 토큰(플랫폼 운영과 연계된 가상화폐)과 의결권을 가지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통제하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며 “그들은 웹 2.0 기업보다 적은 소유권을 갖는다”고 했다.

박재현 람다256 대표는 “웹 3.0은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며 “기술이 발전하면서 변곡점을 맞이할 때마다 어느 정도의 회의론은 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