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카카오톡 선물하기와 네이버쇼핑 럭셔리관 이용화면. 소비자는 양사 플랫폼에서 최대 5000만원의 명품 시계를 구매할 수 있다. /앱 캡처

카카오와 네이버가 나란히 명품 브랜드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에르메스, 구찌부터 티파니앤코, 피아제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브랜드를 자사 선물 플랫폼에 입점시키며 이용자들의 ‘보복 소비’ 심리 공략에 나선 것이다. 양사는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급성장 중인 명품 거래 시장을 선점해 이미 효자 사업으로 자리 잡은 커머스(전자상거래) 영역을 더욱 확장한다는 전략이다.

3일 카카오에 따르면 이탈리아 명품 주얼리 브랜드 불가리는 지난달 27일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불가리가 운영하는 공식 온라인 쇼핑몰을 제외하고는 국내 커머스 기업 가운데 최초 입점이다. 불가리는 인기 상품군인 비제로원, 세르펜티를 전면에 내세우고 총 200여종의 상품을 선보인다. 목걸이, 가방 등 약 10종은 카카오톡 선물하기 단독 상품으로 출시한다.

카카오는 지난 2019년 8월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명품 화장품’ 항목을 신설하며 관련 시장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이듬해인 2020년에는 해당 항목에 지갑, 핸드백, 주얼리를 더했고 같은 해 7월에는 샤넬을 입점하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현재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입점한 명품 브랜드는 160여개가 넘는다. 카카오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들이 온라인 판매의 시작점으로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택하고 있다”며 “선물하기가 프리미엄 선물, 명품 구매처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카카오톡 선물하기의 매출은 ‘모바일 명품관’ 구축에 힘입어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여민수 전 카카오 공동 대표이사는 지난해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카카오톡 선물하기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54% 늘었다며 “비대면 선물 문화의 확산과 백화점에 준하는 명품 라인업의 확대가 맞물리면서 신규 구매자 수, 재구매 고객 비율과 객단가가 같이 상승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물하기, 톡스토어, 메이커스를 포함한 카카오커머스의 지난해 연간 거래액은 전년 대비 43% 증가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홈페이지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에 ‘선물샵’이라는 주제판(상단 탭)을 추가하며 후발주자로 나섰다. 지난 2015년부터 네이버쇼핑을 통해 운영하던 선물하기와 인공지능(AI) 상품 추천 기능을 따로 빼 강화하며 카카오와의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한 것이다. 네이버쇼핑 럭셔리관에는 현재 프레드릭콘스탄트, 몽블랑, 론진을 비롯해 에스티 로더, 랑콤 등 80여개의 패션·화장품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네이버는 스마트스토어와 브랜드스토어 개수를 지속적으로 늘려 선물하기 업계 1위인 카카오를 따라잡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각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는 브랜드스토어의 경우, 올해 1분기 150개 브랜드가 새로 합류해 총 771개가 됐다. 1분기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81% 늘어난 6700억원을 기록했다. 도합 45만개가 넘는 스마트스토어의 1분기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22.4% 늘어난 6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설문조사업체 오픈서베이가 지난해 발표한 '명품 쇼핑 앱 트렌드 리포트 2021'. 오픈서베이는 해당 표에서 2020년부터 2021년까지 1년간 명품을 구매한 국내 소비자 1200명이 이용한 채널을 성별·연령별·월 평균 소득별로 나눠 정리했다. /오픈서베이

카카오와 네이버가 명품에 주목하는 이유는 많다. 우선 유명 브랜드 입점 시 따라오는 마케팅 효과가 있다. 자사 커머스 사업 이미지를 고급화하는 동시에 이용자 유입 확대도 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매출 증대 효과가 있다. 명품은 가격이 높아 마진율이 대중 소비재보다 높다. 패션 업계에 따르면 명품의 마진율은 25% 이상이다. 매스티지 상품으로 불리는 준명품의 마진율도 10~25%에 달한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국내 명품 시장의 성장세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귀띔했다. 커머스 후발주자인 카카오의 입장에서는 이 시장을 공략하면 빠르게 몸집을 불려 업계 1위 네이버의 아성을 노릴 수 있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명품 시장까지 덤으로 파이에 얹어 지금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다.

시장조사전문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명품 시장 규모는 약 15조9000억원으로 세계 7위, 아시아 3위를 기록했다. 이 중 온라인 매출 규모는 약 1조7000억원으로 전년보다 7%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보복 소비가 늘어난 영향이다. 해외여행길이 막히자 여행 자금을 명품 소비로 돌린 소비자도 많았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에 쓰던 분기당 9조원대의 자금이 2020년 2분기부터 3조원 밑으로 떨어졌다”며 “남은 6조원은 국내 소비, 특히 명품 등 사치재 소비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명품 브랜드 입장에서도 국내 양대 인터넷기업과의 협업은 매력적이다. 최근 ‘큰손’으로 떠오른 20~30대에 접근하기에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매장이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메종 발렌티노의 화장품 라인인 발렌티노 뷰티는 지난달 15일 한국에 처음 상륙하며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중심으로 온라인 판매를 먼저 시작하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간한 ‘세대별 온라인 소비 행태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2020년 20~30대의 온라인 명품 구매 결제 금액은 전년 대비 각각 80%, 75% 증가했다.

이처럼 카카오와 네이버가 명품 커머스 확장에 의욕을 보이면서 기존 발란·트렌비·머스트잇 3강 구도에도 조만간 변화가 찾아올지 이목이 쏠린다. 지난해 연간 3000억원대의 거래액을 기록한 이 스타트업들의 매출은 각각 522억원, 217억원, 199억원이다. 발란의 경우 현재 최대 100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 유치를 진행하고 있으며, 투자가 마무리되면 기업가치는 8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빅데이터 분석기업 TDI에 따르면 발란·트렌비·머스트잇 모두 이용자의 70%가 30대 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