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및 부위원장 인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내놓은 노동 유연성을 강조하는 공약으로 인해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크런치모드’ 등 고강도 업무가 다시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크런치모드는 신작 출시를 앞두고 직원들이 퇴근하지 않고 고강도 업무를 반복하는 걸 말한다.

16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업계 관계자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윤석열이 당선됐으니 판교의 등대가 앞으로 노골적으로 밝혀질 것”, ”주120시간 근무를 한다고 해도 야근수당이 제대로 도입 되겠느냐”, “포괄임금제라도 폐지해달라” 등의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특히 업계 내부에서는 이제는 상당히 사라진 업무 형태인 ‘크런치모드’가 부활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크런치모드는 주52시간 근무제가 중소 사업장(50인 이상 300인 미만)에 본격 도입된 지난 2020년부터 점차 줄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2021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게임업계 종사자 중 ‘크런치모드가 있었다’라고 답변한 비중은 2019년 60.6%에서 2020년에는 23.7%로 1년 만에 절반 이하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15.4%를 기록했다.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크런치모드 부활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윤 당선인의 대표 노동 공약이 ‘노동 유연화’이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스타트업과 IT업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 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윤 당선인은 지난해 7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경기도 성남 판교 테크노밸리의 야경. /경기도과학경제진흥원 제공

다만 이런 우려가 과도하다는 반대 의견도 있다. 윤 당선인이 주장한 노동 유연화는 사용자와 근로자 간 합의를 통해서만 일하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측이 마음대로 근로시간을 늘리거나 크런치모드를 강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윤 당선인은 현행 근로기준법을 가장 먼저 손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당선인은 공약집에 “현행 근로기준법은 20세기 공장법 방식으로 획일적이고 경직적인 근로시간 및 임금 규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라고 썼다. 이에 따라 윤 당선인은 노사 합의를 거쳐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 기간을 기존 1~3개월에서 1년 이내로 확대하고, 독일처럼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해 일이 적을 때 초과 근무 시간을 휴가로 소진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업종의 특수성을 고려해 윤 당선인이 주장한 유연한 노동시간 정책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2021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52시간 근무제 안착을 위해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것’을 묻는 질문에 47.4%의 게임사들이 산업 특성을 반영한 근로시간 제도 마련을 꼽았다. 이에 대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전반적으로 게임사들은 게임 업계의 특성을 반영해 근로시간 제도 자체를 재검토하거나 노동시간 단축 제도에서 예외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직원들에 비해 높게 갖고 있다”라고 했다.

한편 주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더불어민주당이 ‘거대 야당’으로 있는 만큼 급격한 노동 정책의 변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은 여전히 국회 의석이 172석에 달하는 거대 정당이다. 윤 당선인이 제1야당인 민주당을 설득하지 못하면 마음대로 노동 정책을 바꿀 수 없는 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