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반도체 제조 장면. /인텔 제공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이 미래 반도체 산업의 중추로 떠오를 전망이다. 특히 복잡하고 방대한 정보 처리를 거뜬히 해내는 AI 반도체의 사용처는 빅데이터 분석과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래 산업 주도권을 쥐기 위해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글로벌 협력체계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15일 코트라(KOTRA)의 ‘미래 신산업 핵심동력, 미국의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AI 기반 산업이 확대되면서 학습과 추론 등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AI 전용 반도체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기술 선도국이 AI 반도체를 미래 신(新)산업의 핵심동력으로 주목하고 있다.

AI 반도체는 단순한 인지 수준의 기능을 갖고 있는 기존 중앙처리장치(CPU) 등과 다르게 복잡한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일이 가능하다. 이전까지의 반도체가 정보(데이터)를 입력한 순서대로 처리했다면 AI 반도체는 대량의 데이터를 동시(병렬) 처리하는 특성을 띄고 있다.

이전까지 AI 반도체의 역할을 했던 것은 그래픽처리장치(GPU)다. GPU는 동시에 계산해야 하는 그래픽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병렬처리 반도체로, 계산이 가능한 여러 반도체를 장착해 대규모 연산 때는 CPU보다 성능이 우수하다. 이 때문에 GPU를 AI 반도체의 시초로 보는 측면이 있다.

최근에는 기존 반도체 구조가 아닌 인간의 뇌를 본따 만든 뉴로모픽 반도체도 떠오르고 있다. 뇌를 이루는 뉴런과 시냅스 구조를 모방해 연산처리와 저장, 통신 기능을 융합한 것이다. 가장 진화한 형태의 반도체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아마존 데이터센터 내 서버. /AWS 제공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현재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50곳 이상이다. 또 AI를 활용한 신사업 확장으로 AI 반도체 매출은 2020년 230억달러(약 28조원)에서 2025년 700억달러(약 86조원)로 늘어날 전망이다.

AI 반도체 시장은 미국 거대 정보기술(IT) 기업 주도하에 설계와 제조라는 기존 생태계에 AI 제품과 서비스를 연결하는 새로운 생태계로 시장이 열리고 있다. AI 반도체 주요 사용처는 데이터센터와 최종 단말(엣지 디바이스)로 세분화되는 중이다.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는 CPU와 GPU를 기반으로 엔비디아와 인텔이 시장을 잡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 마이크로소프트, IBM, 구글 등 글로벌 4대 클라우드 서비스에 사용되는 AI 가속기의 97%를 엔비디아가 점유하고 있다. 최종 단말용 AI 반도체는 스마트폰과 자율주행차를 주력 분야로 삼고 있으며 구글, 퀄컴, 테슬라 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AI 반도체 시장이 커짐에 따라 자본도 빠르게 유입되는 중이다. 미국 자본 데이터 제공 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AI 및 머신러닝(기계학습) 반도체 제조 업체에 17억달러(약 2조1000억원)가 모였다. 이는 2017년 한 해 동안 해당 분야에 유입된 자금보다 많은 수치다.

국내 기업 역시 AI 반도체 시장에 관심을 두고 관련 기술력을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기존의 메모리 반도체에 연산 기능을 넣은 프로세싱인메모리(PIM) 기술로 AI 반도체 시장에 대응한다.

지금까지 메모리 반도체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을 맡고, 연산 기능은 시스템 반도체인 CPU나 GPU가 담당했는데, PIM은 데이터 저장과 연산을 동시에 한다. CPU와 메모리 사이에 데이터들이 오가며 연산 성능이 저하되는 것을 막는 게 장점이다. 여러 AI 서비스와 결합할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SK하이닉스가 개발한 PIM 적용 첫 제품. /SK하이닉스 제공

삼성전자는 지난해 2월 세계 최초의 PIM 반도체를 내놔 주목받았다. 삼성전자의 PIM 반도체는 반도체 설계기업(팹리스) 자일링스가 내놓은 AI 가속기와 성능 검증에 나섰는데, 이 검증에서 기존에 비해 성능은 2.5배 향상되고, 에너지 소비는 60% 이상 줄어든 결과를 받았다.

이어 바로 PIM 개발 소식을 알린 SK하이닉스는 이달 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반도체 학회 ‘국제 고체 회로 학술회의(ISSCC)’에서 PIM 개발 성과를 공개한다. SK하이닉스가 소개할 PIM 제품은 일반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16배 빠르고, 에너지 소모는 80% 줄어든 게 특징이다. SK하이닉스는 이와 함께 최근 SK텔레콤에서 분사한 AI 반도체 기업 사피온과 협력한 기술도 선보이기로 했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과는 기존 강점을 보였던 메모리 분야에 국한된 것으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은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이지현 코트라 실리콘밸리무역관은 “미국에서는 AI를 활용한 주요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고, 수요도 증가하는 추세다”라며 “자동차,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제품과 서비스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AI 반도체를 직접 개발하는 등 시장 경쟁이 다각화되고, 기존 가치 사슬(벨류 체인)도 변화하고 있다”라고 했다.

이 무역관은 “AI 반도체 분야는 아직 초기 단계로, 메모리 중심의 한국 반도체 산업을 시스템 반도체로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라며 “미래 경쟁력을 위해서는 AI 반도체 관련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팹리스와 글로벌 IT 기업과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