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저녁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이사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고인은 카이스트(KAIST) 박사 과정 도중 1994년 서울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자본금 6000만원으로 넥슨을 창업했다. 온라인 게임이란 개념도 없을 때 세계 최초의 PC 온라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바람의 나라’를 개발해 크게 성공하면서 국내 게임업계의 개척자로 꼽혔다. 갑작스러운 고인의 소식에 각계에서 “큰 별이 졌다”는 애도가 이어졌다. 국내 게임업계의 개척자이자, 호기심이 많았던 고인과의 경험을 정리해본다.

지난 2016년 1월 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점심 식사 초대를 받고 제주도 NXC 사옥을 찾았다. 5분 남짓 기다렸을까. 회색 계열의 니트를 입고 덥수룩한 수염이 난 중년의 남성이 쑥스러운 듯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사실 이 사람이 김 이사일 줄 상상도 못했다. 기업 총수라면 경호원을 대동하고 지나갈 때면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할 법도 한데, 어떠한 의전이나 격식이 없었다. ‘소탈한 부자’라는 말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김 이사는 게임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1994년 넥슨을 창업하고 바람의 나라’ ‘카트라이더’ ‘던전앤파이터’ 등의 히트작으로 넥슨을 국내 1위 게임회사로 성장시켰다. 유망한 후배 창업가에게 엔젤투자를 하는 데도 적극적이어서 ‘김정주 키즈’로 불리는 창업가들이 많다. 그런 경영철학 덕분인지 넥슨에는 창업한 뒤, 다시 돌아온 직원도 많다.

김 이사는 ‘은둔의 경영자’, ‘부자’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었다고 했다. 사실 은둔의 경영자라면 기자를 제주도에 초대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김 이사는 “제주도에서 가장 맛있는 밥을 사주겠다”고 안내했다. 그리고 데려간 곳은 30초도 걸리지 않은 NXC의 직원 전용 구내식당. 김 이사는 “개발자 등 직원들이 밥으로 걱정하지 않도록 구내식당에 신경을 많이 썼다”며 자신감 있게 말했다. 실제 김 이사가 제주도 넥슨 사옥을 구상하면서 직접 들여다본 공간은 직원들이 이용하는 구내식당과 어린이집이었다. 특히 어린이집은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을 만큼 구상해달라는 주문을 직접 했다고 한다.

김 이사는 호기심이 많고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수용하며, 이를 사업으로 연결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사실 김 이사와의 인연도 조립 블록 ‘레고’에서 시작됐다. 2014년 취재 현장에서 만난 김 이사에게 레고 부품 판매 커뮤니티인 ‘브릭링크’ 사용자로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앞서 지난 2013년 김 이사는 브릭링크를 인수했다. ‘레고로 만든 창의적인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김 이사는 “언제든지 메일을 보내면 답을 하겠다”며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적어줬다. 이후 브릭링크의 아이디어가 있으면 메일을 보내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한번은 레고로 자체 설계해 만든 ‘우주왕복선과 발사대’ 작품을 김 이사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2016년 1월 제주도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기자와 함께 기념 촬영한 김정주 넥슨 창업주 겸 NXC 이사(왼쪽). /넥슨 제공

이후 2014년 김 이사는 브릭링크 사이트를 개편하면서, 레고 MOC 판매 사이트를 오픈했다. MOC이란 ‘My Own Creation’의 약자로 ‘내가 만든 레고’를 의미한다. 김 이사에게 레고는 일종의 경영 철학과도 같았다.

김 이사가 특히 애정을 쏟았던 분야는 미래 세대인 ‘어린이’였다. 넥슨이라는 회사명도 김 이사가 제안했다. ‘다음 세대의 온라인 서비스(next generation online service)’라는 의미다. 2013년도에 개관한 넥슨컴퓨터박물관도 이러한 관심 때문이다. 또 게임사(史)에 대한 기록이 필요하다는 게 김 이사의 생각이었다. 넥슨은 비디오콘솔에서 PC까지 게임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수의 책을 출판했다.

호기심을 즐기고 그것을 일로 만드는 김 이사의 성격이 잘 묻어난 일이 있다. 2018년 문을 연 넥슨재단의 또 다른 한 축인 ‘어린이 놀이’다. 김 이사는 자신이 효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레고를 통해, 창의적인 놀이문화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넥슨재단 내부에 ‘소호 임팩트’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특허가 만료된 레고 브릭을 생산해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김 이사는 2005년까지 한국에서 레고를 생산했던 당시에 사용됐던 사출 장비를 모으기 시작했다. 특히 레고 브릭을 생산하기 위한 플라스틱 원료를 구입하기 위해, 직접 여의도 LG를 찾아간 적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김 이사는 전 세계 30여개국에 1000만개 가까운 레고 브릭을 기부했다.

김 이사를 잘 아는 한 인사는 “김 이사는 호기심 많은 개척자, 누구보다 소탈하고 활동적이며, 기록과 미래 세대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라며 “우리나라 IT 역사에 큰 별이 지게 된 것 같아 슬프다”고 했다. 젊은 개발자들의 창업 롤모델이였던 그가 생을 마감하기 전 꿈꿨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박성우 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