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글 형태의 애플 VR 기기 예상 이미지. /맥루머스 캡처

22일(현지 시각) 애플의 첫 번째 가상현실(VR) 기기가 올해 나올 수 있을 것이란 보도가 대만 유력 IT전문매체를 통해 흘러나왔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일본 소니는 최신 VR 기기 디자인을 공개하며, 이 기기가 메타버스(가상세계) 게임 방식을 크게 도약시킬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메타(옛 페이스북)가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VR 기기 시장에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잇따라 뛰어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VR 기기가 메타버스를 구현할 핵심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VR 기기를 시작으로 조만간 ‘증강현실(AR) 글래스’ 세상이 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 시기는 이르면 2025년 정도다.

이충훈 유비리서치 대표는 “VR 기기는 게임, 교육용 등 용도가 한정적인 반면 투명한 안경 형태의 AR 글래스는 스마트폰 대체 기기 성격으로 봐야 한다”라면서 “이것이 상품화되기 위해서는 배터리 소모량이 가장 중요한 만큼 초절전 부품, 소형기기에 들어갈 수 있는 대용량 배터리 기술 등이 필수적이다”라고 했다.

◇ VR로 시동 거는 빅테크

대만 유력 IT매체 디지타임스는 부품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애플이 올해 말 데뷔할 예정인 첫 번째 VR 기기에 대한 두 번째 엔지니어링 검증 테스트를 완료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애플은 조만간 3차 검증 테스트를 거쳐 오는 8~9월 대량 생산을, 연말에는 판매를 각각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매체는 예상했다.

메타의 VR 기기인 ‘오큘러스 퀘스트’와 유사한 고글 형태로 나올 이번 애플의 첫 번째 VR 기기는 일반 소비자보다 개발자나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틈새 기기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부품업계 관계자는 “애플의 첫 번째 VR 기기에는 소니의 마이크로 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패널이 탑재된다”라고 했다. 애플의 고가 전략을 미루어볼 때 가격대는 3000달러(약 357만원)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소니가 공개한 VR 기기 '플레이스테이션 VR2'. /소니

현재 이 시장에서는 오큘러스 점유율이 75%에 이르고 있어 애플이 얼마만큼 파장을 미칠지 관심이 커진다. ‘메타버스’의 저자인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기기를 쓰고 보는 것이 눈으로 보는 것과 똑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애플이 내놓을 기기는 화면 해상도가 3000ppi(pixel per inch·인치당 화소 수)로 실제 구현된다면 최신 스마트폰보다 6배나 밀집도를 구현,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해상도에 근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애플이 실제에 가까운 완성도 있는 기기로 승부수를 띄울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애플의 기기 출시가 여러 차례 미뤄졌던 만큼 해를 넘길 가능성도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애플 사정에 정통한 블룸버그의 마크 구르만 기자는 애플의 VR 개발에 문제가 생겨 올해 예정대로 출시하는 데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날 소니 역시 ‘플레이스테이션 VR2(상단 사진 참조)′로 불리는 VR 기기 최종 디자인을 공개했다. 담당 임원인 니시노 히데아키는 “우리 목표는 플레이스테이션 VR2가 기기나 컨트롤러(조작기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거의 잊어버릴 정도로 게임 세계에 계속 몰입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콘솔게임 강자인 소니가 이에 대한 몰입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기로 시너지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전 버전 대비 슬림한 디자인에 렌즈 조절 다이얼이 포함돼 있어 사용자 시야를 최적화할 수 있는 것을 특징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또 선명한 4K(초고화질) 그래픽, 사용자 움직임에 따라 화면이 전환되는 헤드 트래킹 등을 지원할 것이라고도 했다.

◇ “궁극 목표는 AR 글래스”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 /로이터 연합뉴스

VR 기기로 시장이 열리고 있는 이른바 혼합현실(XR) 기기의 종착역은 AR 글래스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애플 역시 VR 기기와 함께 AR 글래스 개발을 동시에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르면 2023년, 늦어도 3년 뒤인 2025년에는 시장에 나올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디지타임스는 “일반 안경 형태가 될 애플의 두 번째 AR 기기는 가격대를 낮추고 배터리를 개선하는 등 애플의 메타버스를 향한 궁극적 목표를 구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구글 글래스’로 일찌감치 시장에 뛰어들었던 구글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삼성전자, 아마존 등 다양한 빅테크 기업도 잰걸음 하고 있다.

김상균 교수는 “스마트폰은 특허건수가 몇 년 전부터 감소 추세로 돌아서는 등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 한계에 도달했다”라며 “이를 대체할 기기가 AR·VR 기능을 담은 ‘스마트 글래스’라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으며, 빅테크가 수조원씩 투자하고 있는 것은 패러다임이 넘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