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볼머 넷플릭스 글로벌 콘텐츠 전송 부문 디렉터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 경제 시대, 망 이용대가 이슈의 합리적인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김윤수 기자

넷플릭스가 25일 한국에서 망 사용료를 지불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토마스 볼머 넷플릭스 글로벌 콘텐츠 전송 부문 디렉터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지털 경제 시대, 망 이용대가 이슈의 합리적인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해 ‘인터넷 생태계를 위한 선순환 체계’를 주제로 발표했다.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서 오징어게임 등 흥행으로 수혜를 입었는데도 이로 인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트래픽을 감당하는 SK브로드밴드 같은 기간통신사업자(망사업자·ISP)에게 아무런 대가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비판과 망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지적이 최근 나오자, 볼머 디렉터가 국회를 방문해 이를 반박하고 나섰다. 볼머 디렉터는 이틀 전인 지난 23일에도 한 세미나에 참석해 비슷한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 “ISP, 이미 이용자에게 콘텐츠 전송료(요금) 받고 있어”

볼머 디렉터는 ISP가 넷플릭스에 부과하는 망 사용료가 이중과금이라고 주장했다. ISP는 이용자가 요청하는 넷플릭스 콘텐츠라는 데이터를 전송해주고 그 대가로 이미 이용자에게 망 사용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넷플릭스에게 중복해서 거둬들이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볼머 디렉터는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사업자(CP)는 ISP의 망에 콘텐츠를 강제로 밀어넣을 수 없다. 이용자가 ISP에 콘텐츠를 요청해야 ISP도 콘텐츠를 전송하는 것”이라며 “이용자들이 원활한 콘텐츠 전송을 위해 이미 ISP에 요금을 낸다. 그게 아니라면 이용자는 무얼 위해서 (ISP에) 대가를 지급하겠느냐”라고 말했다.

한국의 넷플릭스 수요 증가로 트래픽이 과도해져 CP인 넷플릭스도 ISP의 트래픽 부담 역무를 분담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볼머 디렉터는 “한국의 광대역망은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서비스(트래픽)를 충분히 소화하고 있다”라며 “넷플릭스 스트리밍에 필요한 트래픽은 (초당) 3.6Mb(메가비트) 정도인데, 한국 이용자는 200Mb의 초고속망을 이용할 수 있다”라고 반박했다.

볼머 디렉터는 ISP와의 협력하기 위해 망 사용료 대신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CDN)인 ‘오픈커넥트’를 구축했다고 했다. 미국 본사에서 한국으로 데이터를 비효율적으로 장거리 전송할 필요없이 한국에 거점 전송 인프라인 CDN을 직접 구축, ISP에 무상 제공함으로써 트래픽 부담 경감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볼머 디렉터는 해외 CP들이 국내 ISP에 망 사용료를 지불하게 될 경우 인터넷 업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한국에서 직접 서비스하며 콘텐츠를 현지화하고 품질을 높이는 대신 인근 국가에서 서비스하며 콘텐츠를 비효율적으로 장거리 전송하게 될 거란 것이다. 볼머 디렉터는 또 “(넷플릭스의) 고화질 콘텐츠의 수요 촉발은 (이용자의 망 사용 수요가 늘어) ISP에도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준다”라며 “(이런 선순환을 위해) 매출의 50% 이상을 콘텐츠에 투자하며 작년 기준으로 125억달러(14조8800억원)에 달한다”라고 말했다.

조대근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 경제 시대, 망 이용대가 이슈의 합리적인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김윤수 기자

◇ “넷플릭스도 ISP의 이용자, 사용료 지불 이중과금 아냐” “해결 안 되면 법제화”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조대근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는 볼머 디렉터의 ‘이중과금’ 주장을 반박했다. ISP는 이용자가 요청하는 데이터를 변경 없이 송수신해야 하는 ‘전기통신역무’를 CP와 개인 이용자에게 제공하는데, 이 역무를 제공받는 이용자라면 CP 역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CP도 개인과 같은 ISP의 이용자다. 이용자들은 서로 요금을 대납해주지 않고 각자 누리는 서비스에 대한 요금을 낼 뿐이다”라며 “가령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 상대방을 위해 망 이용 요금을 내진 않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정치권과 정부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소송전으로 번진 망 사용료 분쟁을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경우, 입법을 통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날 참석한 이원욱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장(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내 ISP와) 적극적으로 협의해 나가는 게 넷플릭스의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그렇지 않으면 (현재 발의한 관련) 법안을 통과시킬 수밖에 없다.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번 간담회를 공동 주최한 김상희 국회부의장과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현재 해외 CP의 망 사용료 지급 거부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김준모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망 이용 계약은 사업자 간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적으로 규율하진 않는다”라면서도 “다만 이번 분쟁은 소송으로 심화돼 (향후)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있다면 정부도 신중하게 개선방향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윤상필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대외협력실장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확산으로 트래픽이 폭증하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ISP에 대한 CP의 대가 지급 사례가 있다”라며 “넷플릭스가 ISP에 대가를 지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조속한 입법화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반면 구태언 변호사(법무법인 린)는 “다소 성급한 입법이다. 법령의 이해관계자와 용어에 대한 정의가 불확정적인 상황과 철학적 관점에서 성급한 법령 개정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했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 경제 시대, 망 이용대가 이슈의 합리적인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한 넷플릭스·업계·정치권·정부 인사들. /김윤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