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로고. /AP=연합뉴스

구글의 인앱(자체)결제 강제 도입을 막는 ‘구글 갑질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입법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구글이 꾸준히 회유책을 던지고 있다. 구글은 ‘파트너사와의 상생’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치권과 인터넷·콘텐츠 업계는 “입법 완료가 가까워지자 입법 속도를 늦추려는 꼼수에 불과하다”라며 입법 의지와 경계심을 점점 높이고 있다.

구글은 지난 17일 자사 안드로이드 개발자 홈페이지를 통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사들에 오는 10월 예정됐던 인앱결제 강제 도입 시점을 내년 4월로 6개월 유예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구글은 “개발사에 6개월 유예 요청 옵션을 제공한다”라며 “개발사는 오는 22일부터 고객센터를 통해 유예를 요청할 수 있으며 (구글은) 각각의 요청을 가능한 한 빠르게 검토해 피드백을 주겠다”라고 공지했다.

구글은 유예 이유에 대해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전 세계 개발자들의 지난 한 해가 특히 어려웠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앱결제 도입을 위한 기술을 제때 준비하기 어려운 개발사에 유예 옵션을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 반응은 싸늘하다. 국내 업계를 대표해 인앱결제 강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일이다”라며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될 것 같으니까 업계 반발을 잠재워 상황을 바꿔보려는 술수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

이번 유예 발표가 지난 2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구글 갑질 방지법 안건조정위원회와 전체회의 개최 이틀 전에 나왔고, 앞서도 4차례나 중요한 입법 시기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는 점을 들어 제기되는 의심이다.

날짜구글이 내놓은 ‘상생방안’당시 입법 상황
2020년 9월한국 콘텐츠 업계 지원 위한 1000억원 상생기금 마련‘구글 갑질 방지법’ 법안들 국회에서 연달아 발의
2020년 11월인앱결제 강제 도입 시점 2021년 1월에서 2021년 10월로 연기법안 발의 후 본격적인 국회 논의 절차로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2소위) 시작
2021년 3월연 100만달러(약 11억원) 미만의 앱 매출에 수수료 30%에서 15%로 인하2021년 2월 두 번째 2소위 개최, 논의 보류 후 세 번째 2소위 일정 조율
2021년 6월대형 콘텐츠 플랫폼에 반값 수수료 혜택 확대 적용계속 지연되는 2소위 대신해 법안 신속 처리할 수 있는 ‘안건조정위원회’ 개최
2021년 7월인앱결제 강제 도입 시점 2022년 4월로 추가 유예 기회 제공과방위, 안건조정위원회와 전체회의 열어 법안 통과

구글은 지난해 6월 플레이스토어에 유통되는 모든 앱에 인앱결제 도입을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인앱결제를 이용하면 결제액의 30%를 앱 개발사가 구글에 수수료로 줘야 하기 때문에 인앱결제 사용을 강제당한 국내 업계는 크게 반발했다. 앞서 한국모바일산업연합회는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로 국내 콘텐츠 업계가 부담하는 수수료가 1500억원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구글은 인앱결제가 해외 진출에 용이하다는 등 장점을 내세우면서 업계와 상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 구글이 내놓은 첫 번째 회유책은 지난해 9월 “한국 콘텐츠 앱 개발사에 육성, 마케팅, 글로벌 컨설팅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마련한 1000억원 규모의 상생기금 ‘크리에이트(K-reate)’ 프로그램이다. 두 달 전인 같은 해 7월부터 구글 갑질 방지법 법안이 다수 발의되던 시기였다.

총 7개 법안이 발의되고 지난해 11월 본격적인 국회 논의 절차인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2소위)가 시작되자, 구글은 두 번째 회유책으로 인앱결제 강제 도입 시점 연기 카드를 꺼냈다. 애초 계획으로는 신규 출시 앱은 올해 1월부터, 기존 출시 앱은 올해 10월부터 인앱결제를 의무 도입하기로 했다가, 신규 앱에도 10월 도입하기로 한발 물러선 것이다.

구글은 이때도 이번 유예 발표와 마찬가지로 앱 개발사의 기술 준비 여건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지만, 업계에선 반발을 잠재우고 입법 속도를 늦추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왔었다. 연기 발표로 인해 국회 과방위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고 판단해 좀 더 시간을 두고 여야 논의를 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지난 2월 2소위가 다시 열린 후 한 달 뒤인 지난 3월엔 구글이 플레이스토어 기준 연 100만달러(약 11억원) 미만의 앱 매출에 대해 수수료를 30%에서 15%로 낮춰주는 ‘반값 수수료’ 혜택을 주기로 했다. “7월까지 법안을 국회 통과시키겠다”는 더불어민주당 과방위의 입장이 나온 지난달 24일엔 반값 수수료 혜택을 네이버·카카오 등 대형 콘텐츠 플랫폼에도 확대 적용하는 ‘구글플레이 미디어 경험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구글의 이런 노력이 구글 갑질 방지법 저지를 위한 회유책이라는 분석이 맞는다면, 현재로선 역효과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법안 처리를 주도 하고 있는 민주당 과방위는 구글의 ‘양보’가 국회의 입법 시도만으로 얻은 ‘갑질 방지 효과’라고 보고, 이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 반드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한준호 민주당 의원은 법안이 과방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법안을 상정하고 얻은 효과 중 하나는 전 세계에 전례 없이 구글이 갑작스럽게 수수료를 일부 낮추기도 했고 (도입 시점을) 연기한다는 발표도 한 것이다”라며 “법안을 내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구글의 ‘갑질’을 방지해왔고 법안이 통과되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구글 본사가 있는 미국에서도 반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최근 36개주(州)와 워싱턴DC는 구글을 상대로 인앱결제 정책과 관련해 독점금지법 위반 소송, 이른바 반독점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