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엔씨·넷마블 등 이른바 3N으로 대표돼 왔던 게임업계에 K·S·K·P가 가세하며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연매출 1조원 이상을 뜻하는 ‘1조 클럽’에 가입한 크래프톤(K), 스마일게이트(S)를 비롯해 인수합병(M&A)과 투자에 속도를 내며 세를 불려 나가고 있는 카카오게임즈(K)와 펄어비스(P)가 신흥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19일 게임 업계에 따르면 올해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히는 크래프톤은 지난 1분기 2272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엔씨소프트 567억원, 넷마블 542억원을 4배쯤 뛰어넘었다. 또 크래프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7739억원으로, 업계 3위 넷마블(2720억원)을 제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24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엔씨소프트를 바짝 쫓고 있다.

크래프톤은 업계 맏형 넥슨과도 비교할만하다. 비록 1분기 영업이익은 넥슨이 기록한 4551억원의 절반 수준이지만, 시가총액에서는 넥슨에 전혀 밀리지 않고 있다. 크래프톤이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크래프톤의 상장 예정 주식 수는 5030만4070주로, 공모 희망가를 적용하면 23조~24조원의 가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넥슨의 이날 기준 시가총액 약 24조원과 대등한 수준이다.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은 인도 지역에서 베타 테스트를 시작한다. /크래프톤 제공

증권가 등에서는 크래프톤이 대표작 ‘배틀그라운드’ 외에는 뚜렷한 인기작이 없어 기업가치가 다소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보지만, 현재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신작 ‘배틀그라운드: 뉴스테이트(NEW STATE)’의 미국 현지 알파테스트(사내 비공개 테스트)를 진행하는 등 출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 게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는 텐센트 ‘화평정영’에 대한 기술 로열티를 받고 있다. 세계 2위 시장으로 꼽히는 인도에서는 곧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의 재출시가 암박한 상황이다.

여기에 게임 뿐 아니라 사업 다각도를 위한 투자에도 나서고 있다. 최근 크래프톤은 모빌리티 서비스 타다를 운영하는 VCNC의 모바일 메신저 앱 ‘바트윈’을 지난 3월 인수했는데, 이는 딥러닝 연구를 위해서다. 앞서 지난 1월 크래프톤은 ‘챗봇 이루다’를 개발한 스캐터랩에 투자해 지분 4.21%를 확보했고, 현재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보이저엑스와 딥러닝 언어모델을 공동개발 중이다.

크래프톤은 딥러닝을 활용, 인간과 대화하는 ‘언어 모델’, 광범위한 대화가 가능한 ‘오튼 도메인’, 텍스트를 감정이 있는 음성으로 바꾸는 ‘보이스 액터’, 사물을 인식해 자동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캐릭터 애니메이터’를 연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상호작용하는 버추얼 프렌드(가상 친구)를 만들어 내겠다는 게 크래프톤의 계획이다.

스마일게이트 크로스파이어 게임 화면. /스마일게이트 제공

스마일게이트의 성장세도 무섭다. 인기 IP인 크로스파이어를 유통하는 스마일게이트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스마일게이트 매출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매출의 83.7%를 해외시장에서 거두고 있다는 점은 넥슨, 엔씨소프트 등이 국내 시장에 편중한 사업 구도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차별점이다.

스마일게이트는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콘솔 게임 제작에도 몰두 중이다. 지난해 말 스페인에 신규 스튜디오를 만들어 콘솔용 게임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올해 콘솔 게임인 ‘크로스파이어X’를 마이크로소프트 XBOX용으로 내놓는다.

여기에 드라마와 영화 등 콘텐츠 사업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7월 중국에서 방영한 e스포츠 드라마 ‘천월화선’은 누적 조회수 18억건을 기록했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제작될 영화 크로스파이어의 배급 계약을 소니픽쳐스와 맺기도 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최근 콘텐츠 산업 쪽 인력도 계속해서 충원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게임즈 MMORPG 오딘: 발할라 라이징

카카오게임즈는 M&A로 몸집을 불리는 중이다. 지난해 12월 개발사 넵튠의 최대주주로 올라섰고, 자회사 프렌즈게임즈의 신임 대표로 정욱 넵튠 대표를 선임하기도 했다. 오는 7월에는 프렌즈게임즈와 웨이투빗의 합병 절차를 마무리한다. 웨이투빗은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보라’를 운영하고 있으며, 합병 회사는 이에 기반한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등 신사업 확장을 예고하고 있다.

자회사 카카오VX는 골프 인구의 증가로 매출 성장세가 뚜렷하다. 카카오게임즈가 올해 1분기 기록한 1301억원의 매출에서 14.5%를 담당했다. 주력사업으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카오게임즈의 다음 스텝은 모바일 광고 플랫폼 ‘에드엑스’가 지목된다. 인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애드엑스는 네이버, 삼성전자, 넥슨 출신들이 설립한 회사로, 코스닥 시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900억원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펄어비스 붉은사막 트레일러

펄어비스는 조금 더 게임 본연의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 게임 개발사로는 유일하게 자체 게임 엔진(제작 도구)을 보유하고 있다. 동시에 콘솔 시장 공략을 위한 기술 완성도도 높여가고 있다. 신작 ‘붉은사막’은 4K UHD(초고해상도) 게임에 주력하며서 해외 인지도를 높여가는 중이다.

M&A도 게임 개발사를 위주로 추진 중이다. 지난달 로스트킹덤을 만든 모바일 게임 개발사 팩토리얼게임즈를 200억원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펄어비스는 검은사막을 넘어 포트폴리오를 한층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다만 이들 KSKP가 진짜로 3N을 넘어서려면 결국 더 좋은 게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게임 회사라는 본연의 위치를 자각하고, 회사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은 “(KSKP의) 공통적인 문제는 대단히 성공을 거둔 1개의 게임에만 의존하는 구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라며 “3N을 넘어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좋은 게임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