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총 170억달러(약 19조)에 달하는 삼성전자의 대규모 미국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투자가 결정됐지만, 어느 곳에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유력한 투자지로 파운드리 팹(공장)이 있는 텍사스주 오스틴은 물론, 뉴욕주, 애리조나주 등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관건은 최대 1조원에 달하는 세제혜택과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물·전기 공급이 용이한 입지다.

지난 21일(현지시각)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행사에서 “미국에 170억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구축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그간 전망 또는 관측에 불과했던 19조원 투자 계획이 삼성전자 최고경영자 입을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5㎚(나노미터·1㎚는 10억 분의 1m) 파운드리 공장을 지을 예정으로, 해외에 첨단 미세공정 팹이 지어지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반도체 업계는 삼성전자가 이번에 투자해 건립할 공장에는 3㎚ 공정도 적용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김 부회장은 구체적인 투자 시기나 지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삼성전자 투자에 미국 내 여러 지역이 들썩이는 이유다. 이번 투자는 단순 공장 건립에만 그치지 않고, 최대 7000명의 직간접 고용창출과 9조원에 달하는 지역 경제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1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상무부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곳은 이미 64~14㎚ 공정으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디스플레이 구동칩(DDI)·상보형금속산화물반도체(CMOS) 이미지센서 등을 만들고 있는 텍사스주 오스틴시다.

다만 오스틴시는 세제혜택 등에서 삼성전자와 이견을 표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언론 등에서는 오스틴시가 투자 이후 10년간 세제혜택과 함께 총 6억5000만달러(약 7300억원)에 달하는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삼성전자가 이를 거절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또 삼성전자가 세제혜택만 25년간 1조원을 요구했다거나, 오스틴시가 세제혜택 규모를 상향 조정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올해 초 있었던 한파로 오스틴시를 포함한 텍사스주 전체에서 심각한 전기부족 사태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반도체 생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력과 물 공급이 차질을 빚었다는 점은 삼성전자가 오스틴시를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측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픽=김란희

삼성전자 오스틴 팹은 지난 2월 16일(현지시각) 전력 공급이 끊겼고, 이 탓에 약 6주간 가동을 중단했어야 했는데, 입은 피해액만 3000억~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분기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의 영업이익의 10%에 달하는 수치다.

뉴욕주나 애리조나주도 삼성전자에 구애를 보내고 있다. 현재 물밑 협상이 진행 중이다. 특히 뉴욕주는 현재 삼성전자에 1조원에 달하는 세제혜택을 약속한 상황이고,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유치하려고 하는 제네시카운티의 서뉴욕 과학기술첨단제조산업단지(STAMP)의 경우 여러 입지 조건이 좋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STAMP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태양광, 바이오산업 등을 위한 505만8570㎡ 규모의 단지다. 인근에 버팔로 나이아가라 국제공항과 뉴욕주를 관통하는 주간(州間)고속도로 제10호선이 지나고 있다. 또 나이아가라 폭포로부터 충분한 물과 함께 수력발전소에서 전기 역시 싸게 공급받을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해당 지역에서는 반도체 전문인력이 매년 1만7000여명 배출돼 인력 확보에도 유리하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반도체 생산 클린룸 내부. /삼성전자 제공

애리조나주 마리코파카운티 굿이어시의 외국무역지대(FTZ) 역시 유력한 입지 중 하나다. 주간고속도로 10호선과 주요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피닉스시와 20분 거리로 인접해 교통이 좋다. 또 최근 대만 TSMC와 미국 인텔이 투자 계획을 밝혀 텍사스에 이은 미국 내 제2의 반도체 허브로 주목받고 있다.

애리조나주는 이미 삼성전자에 1조원 규모의 세제혜택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이 지역에 매물로 나온 공장 부지 2곳에 대한 경매가 유찰돼, 삼성전자가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다만 앞서 지난 1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전자가 2022년 10월 가동을 목표로 굿이어시와 (공장 설립과 관련한)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는 투자지를 떠나 미국 내에서 어떤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는지가 더 관건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안정적 수요처가 공장 입지나 세제혜택 등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기존 미국 오스틴 파운드리 팹은 14㎚ 이상 공정이 주력으로 애플, 퀄컴, AMD 등 미국 기업이 개발하는 7㎚ 이하 최신 공정 칩 수주가 불가능하다”라며 “미국 정부의 리쇼어링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최신 공정이 가능한 미국 파운드리 증설이 필수적으로, 관련 장비 업체에도 긍정적일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