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세제 혜택, 규제 완화, 인력 양성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진우 기자

국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 공격적인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 3% 수준인 반도체 투자 세제 혜택을 미국 의회가 추진했던 40%대로 늘리고,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정부 주도의 법제화된 인력 양성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28일 서울 강남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반도체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라며 “특히 각국 정부의 세제 혜택에서 미국이 40%를 목표로 했던 반면 한국은 3%에 불과하다”고 했다.

실제 미국 의회에서 나왔던 반도체산업 지원법(CHIPS for America Act)은 2024년까지 반도체 투자비의 40%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6월 입법 과정에서 세제 혜택은 기각됐지만 인프라와 연구개발(R&D)를 지원하기 위해 최대 500억달러(약 55조6100억원)의 예산은 통과된 상태다. 또 유럽연합(EU)은 올해 초 10㎚(나노미터·10억 분의 1m) 이하 글로벌 반도체 생산량의 20%를 확보하기 위해 반도체 투자 비용의 20~40%를 보조금으로 지급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반면 우리나라는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별도의 지원이 없으며, ‘대기업 기본 공제율’을 적용해 3%의 세제 혜택만 주고 있다. 중국이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달성하겠다며 2030년까지 장비, 원자재, 소모품에 대해 관세를 받지 않은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가 정부에 제안하는 반도체 지원 정책.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제공

박 회장은 “국내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능형 메모리 반도체 30%, 자동차용 반도체 50%, 파운드리 40%, 소재·부품·장비 및 패키지 40% 세제 혜택을 제안한다”며 “반도체는 생산 시설에 투자하는 규모에 따라 산업의 경쟁력이 결정되는 대표적인 장치 산업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세제 혜택 없이는 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라고 했다.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과 교수 역시 “반도체 투자에 대한 정부 보조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라며 “누군가는 ‘반도체 대기업들 돈 많이 버는 데 왜 특혜를 주자고 하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반도체 산업이 국가 경쟁력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화학물질관리법, 화학물질등록평가법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는 “이런 법들이 국내 반도체 생산시설의 신속한 구축을 막고 있다. 정부가 이런 법들을 유예해줬으면 좋겠다”며 “지원은 적지만 규제는 다른 나라보다 더 많다는 현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인재 육성을 위한 정부 주도의 인력 양성 정책의 필요성도 나왔다.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대표는 “반도체는 개발, 생산, 영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 있는 인력을 필요로 하는데, 대기업이 우수 인력을 쓸어가면 작은 업체들은 인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라며 “지난 10년간 정부의 인력 양성에 대한 정책은 일관성이 없었다. 우수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부의 인력 양성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반도체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는 반도체계약학과 확대, 소·부·장 및 설계 업체의 취업을 전제로 한 양성 프로그램,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석·박사 고급 인력 양성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권오경 한림공학한림원 회장은 “국내 반도체 산업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정부 주도 패권 경쟁에서는 뒤처지고 있다”라며 “강력한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인력 양성을 위한 정책의 필요성이 매우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