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 김용주 레고켐 바이오사이언스 대표,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회장. /각사 취합

이중항체 전문 바이오벤처인 ‘와이바이오로직스’가 있는 대전 유성구 대덕 테크노로(路). 이곳을 반경으로 차로 10분 거리에 대전의 내로라하는 벤처 기업이 포진했다. 북서쪽에는 국내 최다 기술이전 타이틀을 가진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가 있고, 남서쪽에는 정맥주사를 피하주사로 바꿔주는 플랫폼 기술을 개발한 알테오젠(196170), 동쪽으로 실개천 하나를 건너면 분자진단키트를 개발하는 바이오니아(064550) 본사가 있다.

◇ LG화학 출신이 세운 바이오벤처 대전에 포진

대전 소재 바이오벤처 숫자는 250여개. 이 중 코스닥 시장 상장사만 15개가 넘는다고 한다. 바이오벤처라고 하면 ‘판교’를 떠올리는데, 알짜 기업이 대전에도 있는 것이다. 맹필재 바이오헬스케어협회장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LG화학을 나온 연구자들이 2000년대 초반 창업을 할 때 대덕단지에 입주하면서 바이오벤처타운이 형성됐다”며 “LG화학 출신들이 성공스토리를 만들고 후배들을 이끌면서 바이오산업을 선도해 나가고 있다”라고 했다.

맹 협회장의 말처럼 옛 LG화학(LG생명과학) 출신들은 국내 바이오 벤처 업계를 주름잡고 있다. LG사단의 모태는 LG화학이 1979년 충남 대덕연구단지내에 설립한 LG바이오텍연구소다. 다른 대기업이 1980년대 후반에 바이오 사업에 진출한 것과 비교하면 5년 이상 빠른 시도였다.

하지만 LG화학에 바이오는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IMF 직후인 2002년 LG화학이 제약·바이오사업을 별도로 쪼개 LG생명과학으로 분사하면서 고통이 시작됐다. 별도 법인으로 출범한 LG생명과학은 2003년 수익극대화를 위한 사업 전략 수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자진 퇴사하는 연구원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가 됐다. 회사를 떠난 연구원들은 각자의 연구 특기를 살려 바이오 벤처 창업에 나섰다. 이렇게 창업한 바이오 벤처 중에서 10여곳이 코스닥 시장 상장에 이르며 바이오업계 ‘LG사단’이 됐다. 맹 협회장은 “구자경 LG명예회장이 처음 바이오를 시작할 때 국내는 물론 해외에 있는 우수한 인재를 끌어모았던 것으로 안다”며 “이런 인재들이 회사 밖으로 나가서 자기 뜻을 펼친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창업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이른바 ‘LG사단’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을 얼마 되지 않는다. 이는 신약 연구 개발이 갖는 특성 때문이다. 신약 연구는 성과를 내기까지 10여년 이상 걸린다. 맹 협회장은 “연구가 축적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구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코스닥 시장 상장에 잇달아 성공하면서 알려지게 됐다”고 했다.

◇ “네트워크·연구협업으로 글로벌 도약 이끌 것”

LG화학 기술연구원장을 지낸 최남석 박사가 LG사단의 좌장이다. 최 박사를 중심으로 김용주 레고켐 바이오사이언스 대표,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회장,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가 LG사단 큰형님으로 통한다. 조관구 큐라티스 대표와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도 LG화학 출신이다.

레고켐바이오는 플랫폼기술을 통해 글로벌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회사이고, 알테오젠은 정맥주사용으로 쓰이는 항체나 단백질 약품을 피하주사용으로 바꿔주는 효소생산 기술을 개발한 회사다. 바이오벤처로 시작한 두 회사는 신약후보물질을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이전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키웠다.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췌장암 치료용 표적항암제(CG-745)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현재 국내 식약처에서 임상 2상이 진행 중이다. 이 밖에 차세대 관절염 진통소염제 아셀릭스를 상업화하고 분자표적항암제(CG-806)를 기술수출했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는 사무총장 역할을 한다. 브릿지바이오는 지난 2019년 8월 글로벌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에 폐질환 치료 신약후보물질(BBT-877)을 1조4600억원에 수출해 관심을 끌었다. 브릿지바이오에 이 신약후보물질을 전달한 것이 또 레코캠바이오사이언스다.

이런 큰 형님들 뒤에는 이정진 종근당바이오 대표, 손미진 수젠텍 대표, 유진산 파멥신 대표, 임국진 프로테옴텍 대표, 김성기 파나진 대표, 김소연 피씨엘 대표, 최호일 펩트론 대표, 윤문태 씨앤알리서치 회장 등이 뒤따른다. 올해 상장을 계획하고 있는 와이바이오로직스 박영우 대표도 LG화학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LG사단이 앞서갈 수 있었던 것은 수십년간 쌓여 온 교류협력의 결과물이다. 신약 연구 개발은 각 연구자의 연구 협업, 정보 공유가 필수적이다. LG사단은 지난 2016년부터 ‘LG 오비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연 1회 정기모임을 가져왔다. 코로나19 사태가 후부터 모이지 못했지만 2019년 7월 모임에 100명 넘게 참석했다고 한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는 “코로나로 2년 가량 전혀 모임을 하지 못했다”며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서 일상생활이 회복되는 내년부터 다시 모임을 가동하려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LG 출신 선배들이 바이오산업에 도전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큰 힘이다”라고 했다.

한편 최근 SK케미칼과 SK바이오팜 출신들도 최근 바이오 벤처에 대거 합류해 활약하면서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LG화학에 이어 SK 출신들을 통해 국내 신약개발 저변이 넓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라며 “벤처기업들이 핵심 인재 영입을 통해 이런 것들을 흡수할 수 있다면 K-바이오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