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해외입국자들이 검역 절차를 안내받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미국 출장길에 백신을 맞은 중견기업 대표 A씨는 ‘기업인 신속입국 및 격리면제’ 제도에 따라 한국 입국 후 14일 자가격리를 하지 않았다. A씨는 자가격리를 하지 않는 대신 인천공항 입국 직후 지정 호텔로 이동해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 호텔에서 머물러야 했다. 정부는 격리면제를 받은 사람은 지정 임시생활시설(호텔)에서 PCR 검사를 받고 음성 결과가 나와야 밖에 나올 수 있도록 지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지난달 29일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국내 입국할 때 격리를 면제하기로 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이튿날 오전 급한 회의가 예정돼 있던 A씨는 ‘백신 인센티브’를 근거로 미국에서 받은 ‘코로나19 백신 증명서’를 당국에 제출했지만, ‘해외 백신 접종자는 대상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이튿날 A씨는 아침 회의에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정부가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늘리기 위한 백신 인센티브를 내놓았지만, 정부가 기업인의 해외 활동을 돕기 위해 도입한 ‘신속입국 절차’가 오히려 역차별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가 격리가 완전 면제되는 국내 백신 접종자와 달리 해외에서 백신을 접종한 후 귀국하는 기업인들은 접종을 인정 받지 못해 ‘격리 면제’라는 지원 제도를 이용하면서도 호텔에 1박 2일 강제 숙박해야 한다.

28일 방역당국에 따르면 모든 해외입국자는 14일간 자가격리 혹은 시설에서 격리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계약 투자 등 중요한 사업상 목적이나 격리 면제서를 발급받은 대상자는 공항 선별진료소나 임시 검사시설에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은 후 음성 판정을 받으면 격리를 면제받을 수 있다.

이 제도에 따르면 ‘격리 면제’를 받은 기업인들은 방역당국과 계약한 호텔로 이동해 진단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또 입국 후 받는 중간 PCR 진단검사 비용도 직접 자신이 내야 한다. 반면 14일의 단순 자가격리를 하는 사람은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해외 입국자 전용버스와 KTX 전용칸으로 귀가한 후 자택 인근 관할 보건소에서 PCR 검사를 받고 자택에서 기다리면 된다. PCR 검사 비용도 모두 무료다.

국내 백신 접종자는 자동으로 ‘격리 면제'를 해 준다. 국내에서 백신을 접종하고 해외를 다녀오면 호텔 격리 없이 공항에서 운영하는 해외입국자 전용버스나 KTX 전용칸을 이용해 자택으로 돌아와, 인근 보건소 PCR 검사에서 음성 판정만 받으면 바로 업무에 복귀할 수 있다. 이런 ‘격리 면제’에 해외 백신 접종자는 예외다.

방역당국은 이달 초 해외에서 백신을 접종한 사람의 입국 제한을 풀어달라는 요청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가 승인한 백신 접종자가 입국할 때 자가격리 면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자세한 지침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 발급된 백신 접종 확인서의 진위 여부의 판정이 어려운 것이 문제라고 한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기업인들은 이를 두고 ‘행정 편의주의’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에서 화이자 접종을 두 차례 마친 한 기업인은 “미국은 백신이 넘쳐나서 동네 병원에만 가도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수 있는데, 굳이 접종 확인서를 위조하면서까지 한국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이미 백신을 두 차례나 맞았는데, (격리 면제를 위해서) 한국에서 또 백신을 맞아야 하나”라며 “이제는 미국에서 백신을 맞은 것이 후회될 지경”이라고 했다.

또 다른 기업인 B씨는 “정부가 불과 한 달 전까지 코로나 19 백신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상황에서 해외 접종자에 대한 역차별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역차별이 개선되지 않으면 마스크 해방은 남의 나라 얘기가 될 것”이라며 “국내는 물론 해외 접종자까지 포함해 면제 기준을 명확히 해야 접종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해외 백신을 접종하고 귀국한 사람들의 불만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국가마다 인정하는 백신의 종류도 다르고, 또 우리 국민들이 이들 백신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도 다르다”며 “이런 인식 차이를 감안해서 제도 정비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기업인 격리면제 승인건수는 지난해 12월 14일부터 이달 21일까지 총 1만44건에 달한다. 이 중 미국(1902건)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중국(1534건), 독일(1322건) 순이었다. 일본은 방역과 상호주의를 이유로 지난 1월 14일부터 격리면제서 발급이 중단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