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백신 기업 파트너십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백신 위탁 생산 계약 MOU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 문 대통령, 스테판 반셀 모더나 CEO. /연합뉴스

미국 제약사인 모더나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와 손잡고 국내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오는 8월부터 미국 이외에 공급하는 백신 수억회분을 생산하게 된다. 한국 정부는 모더나의 ‘mRNA(메신저 리보핵산)’ 기술을 이용한 결핵 백신 등의 연구 및 임상시험도 진행하기로 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 22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윌러드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행사를 열고 총 4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모더나 백신 위탁생산 ▲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와 모더나의 한국 내 시설 투자 및 인력 채용 지원 ▲정부와 SK바이오사이언스, 노바백스의 독감 결합 백신 등 개발과 생산 ▲국립 보건연구원과 모더나의 mRNA 백신 기술 협력 등이다.

이번 협약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더나가 스위스에서 생산한 백신 원액을 들여와 국내에서 무균 충전, 라벨링, 포장 등을 거쳐 최종 완제품을 생산한다. 여기에 이번 협약에서 정부는 mRNA 백신 생산시설 설립을 위한 모더나의 국내 투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문동민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양해각서에 따라 모더나에 공장 부지를 추천하는 등 투자 활동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이번 협약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코로나19 백신 하청생산’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두 회사의 현재 계약은 백신 기술이전이 포함된 것이 아니라 포장 단계인 ‘병입 충전’에 해당해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모더나는 스위스 기업 론자에 mRNA 제조 기술 이전을 포함한 ‘원액 생산(DS)’을 맡겼다. 스테판 방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가 전날(23일) SBS 인터뷰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기술을 이전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언제, 어떤 기술을 이전할지, 언제 공장을 지을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방셀 CEO의 발언은 한국 정부의 지원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다른 대안도 고민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지난 21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백신 생산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이 매체는 “방셀 CEO가 일본 여러 기업과 논의 중이다. 그는 일본이 연구 능력 뿐만 아니라 양질의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모더나의 mRNA 백신을 두고 한국과 일본 정부가 경쟁을 벌여야 할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더욱이 mRNA 백신 생산 기술은 여러 회사 특허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mRNA 백신은 핵심 원료인 mRNA와 이를 보호하는 보호막(지질 나노 입자)으로 구성된다. 지질 나노 입자 기술은 미국 아뷰튜스가 특허를 갖고 있고, mRNA 합성 기술은 미국 트라이링크가 특허를 갖고 있다. 모더나는 mRNA 핵심 원료를 생산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모더나의 기술 이전만으로 백신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란 뜻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협약만으로도 산업적 측면에서 매우 고무적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모더나의 mRNA 백신은 미국 정부가 수조원의 예산을 들여 개발한 첨단 기술인데, 이를 한국과 공유하는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다른 나라와 백신 파트너십을 체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은 항체 의약품이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분야는 최고 수준이었지만 mRNA 분야는 약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백신 불모지였던 한국이 이번 협약을 계기로 글로벌 백신 허브로 부상하게 되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단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mRNA 백신을 생산하게 되면서, 한국이 새로운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에 대응할 시스템을 갖추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국내 기업은 이미 mRNA 백신을 제외한 나머지 백신 위탁생산 계약을 맺었다.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는 아스트라제네카, 노바백스의 백신을 원액부터 완제품까지 모두 위탁생산하는 계약을 맺었다. 러시아 코로나19 백신인 스푸트니크V를 위탁생산하는 휴온스(243070) 등 국내 기업 컨소시엄은 기술 이전을 받아 원액과 완제품 생산을 한다. 여기에 mRNA 위탁생산을 맡게 됨으로써 국가적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할 다양성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이 밖에 기술 이전 계약을 맺은 SK바이오사이언스와 노바백스는 앞으로 코로나19와 독감에 동시 대응할 수 있는 ‘결합백신’ 개발에 협력한다. 한·미 양국은 조만간 과학자,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전문가 그룹’을 구성해 이번 협약을 실무 지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