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의 KFC 매장. KFC의 중국어명은 컨더지(肯德基)다. /베이징=김남희 특파원

5일 오전 7시 중국 베이징의 한 KFC 매장. 월요일 출근길에 아침을 먹고 가려는 사람들, 배달 음식을 픽업하는 배송 기사들로 매장 안이 분주했다. KFC는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entucky Fried Chicken)’이란 브랜드 이름처럼 튀긴 닭 요리가 주력 메뉴인 곳이지만, 아침 손님 대부분은 죽이나 유탸오(밀가루 반죽을 기다란 모양으로 튀긴 일종의 빵), 뜨거운 더우장(두유와 비슷한 콩국)을 먹고 있다. 중국인의 대표적인 아침 식사 구성품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7년 12월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베이징 자금성 근처의 한 식당에서 ‘중국 서민의 아침 일상 체험’이라며 유탸오와 더우장을 사먹은 적이 있다.

KFC는 중국 아침 식사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중국인이 아침을 먹으러 가장 많이 가는 곳 중 하나가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그만큼 외국 기업이 중국 음식 문화와 식습관을 반영해 현지화에 성공한 드문 사례로 꼽힌다. KFC보다는 컨더지(肯德基)란 중국 브랜드명이 워낙 익숙해, KFC를 원래부터 중국 회사로 생각하는 중국인도 꽤 많다. 2015년까지 26년간 KFC 중국 사업을 맡았던 샘 수는 한 인터뷰에서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 모델이란 아이디어를 가져와 중국 소비자 입맛과 수요에 맞게 KFC를 변형했다”며 “외국 기업이 아니라, 현지 기업으로 보여지는 전략을 썼다”고 했다.

중국 KFC에서 파는 대표적인 중국식 아침 메뉴. 주로 죽과 유탸오, 더우장 등으로 구성된다. /베이징=김남희 특파원

KFC는 1987년 서구 패스트푸드 체인 중 가장 먼저 중국에 매장을 냈다. 베이징 중심부인 천안문(톈안먼)광장 근처에 첫 매장을 열었을 당시, 몇 달이나 매장 밖에 긴 줄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서구 문화를 향한 동경이 크던 때였다.

그러나 KFC는 미국식 프라이드 치킨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인의 아침 식사 문화를 겨냥한 다양한 아침 메뉴를 선보였다. 중국인의 입맛과 취향에 맞춘 철저한 현지화 메뉴 아이템을 개발한 것이다.

중국인의 하루에서 아침 식사 비중은 큰 편이다. 중국 어느 도시에서나 아침에 중국식 만두나 더우장, 죽, 유탸오 등을 손에 들고 출근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KFC는 출근길에 들러 간편하게 사먹을 수 있는 중국식 아침 식사 수요를 포착했다. 지역마다 주로 먹는 음식이 다르지만, 중국인이 보편적으로 많이 먹는 품목을 아침 메뉴로 개발해 내놓기 시작했다. 코로나 대유행 전 한국인이 중국으로 여행을 많이 가던 당시, 중국식 아침을 먹으러 주로 가던 곳도 KFC였다.

중국 KFC에서 판매하는 닭발과 양꼬치, 소고기 꼬치 메뉴. /KFC

요즘 아침에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인 오리알 죽이나 죽순과 채소를 넣은 닭죽, 유탸오 등의 가격은 대체로 우리 돈 1000원대다. 그중에서도 오리알 죽과 유탸오, 더우장 3종 세트가 할인 포함 18위안 수준으로 판매량이 높다고 한다. KFC는 올해 3월엔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를 넣은 중국 전통 만두 샤오룽바오를 신제품으로 내놨는데, 브랜드의 핵심(닭고기)을 유지하면서 중국적 요소(만두)를 가미한 현지화 메뉴란 평이 나왔다. 간장과 찻잎을 넣어 삶은 갈색빛 달걀, 에그 타르트도 스테디셀러 아침 메뉴다. 밤에는 중국의 매운맛인 마라맛 닭발과 양꼬치도 판다.

중국 KFC에서 배달 시킨 닭발과 양꼬치. /베이징=김남희 특파원

중국 KFC는 중국 최대 요식업체인 염차이나(Yum China 百胜中國 바이성중국) 소속이다. 염차이나는 2016년 미국 패스트푸드 브랜드 그룹 염브랜즈(Yum! Brands)에서 분사해 독립 상장 기업이 됐다. 염차이나가 중국에서 KFC를 비롯해 피자헛, 타코벨, 라바짜 커피 운영을 맡고 있다. 이 중 KFC의 매출 비중이 절대적이다. 염차이나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중국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3% 감소한 95억7000만 달러(약 12조5000억 원)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KFC 매출이 72억1900만 달러로, 전체 매출의 75%를 차지했다.

염차이나가 중국 본토에서 운영 중인 모든 브랜드의 매장 수는 2022년 말 기준 1800개 도시에서 1만2947개에 달했다. 중국의 코로나 방역 정책이 엄했던 지난해, 매장을 1159개 추가했다. 대부분 KFC와 피자헛 매장이다. 시장조사 업체 스태티스타 집계에 따르면, 중국 내 KFC 매장 수는 2022년 말 기준 8214개다. 2021년(7437개) 대비 700개 이상 늘었다.

중국 베이징의 맥도날드 매장. /베이징=김남희 특파원

KFC가 중국 아침 시장을 장악하자, 경쟁사인 맥도날드도 비슷한 중국 전용 메뉴를 내놨다. 유탸오를 비롯해 오리알 닭죽이 대표적이다. 야식으론 중국식 양념을 넣은 닭고기도 판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 맥도날드 매장 수는 약 5000개에 달했다. 지난해 1년간 역대 최대인 700개 이상을 새로 연 데 이어, 올해도 점포 900개를 추가할 예정이다. KFC와 함께 미국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상징인 맥도날드는 2017년 중국 본토와 홍콩의 사업 80%를 중국 중신(CITIC)그룹과 사모펀드 칼라일에 21억 달러(약 2조7400억 원)에 매각했다. 중신그룹이 맥도날드 차이나 지분 52%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의 맥도날드 매장에서 판매 중인 중국식 아침 메뉴. /베이징=김남희 특파원

중국 시장에서 KFC와 맥도날드의 유연한 메뉴 구성은 한국에서 KFC나 맥도날드 같은 외국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운영이 해외 본사의 엄격한 개입으로 제한된 상황과 대조적이다. 한국 KG그룹은 2017년 사모펀드 CVC캐피털로부터 500억 원에 KFC 코리아를 인수한 후, 올해 4월 또 다른 사모펀드 오케스트라PE에 600억원 안팎에 다시 매각했다. 업계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금액에 KFC를 판 것으로 전해졌다. KG그룹은 KFC 매각 당시 ‘글로벌 본사가 국내 영업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천편일률적 글로벌 운영 정책을 강요했다’며 개별 국가 영업권 제한에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KFC 본사는 KFC 코리아가 닭을 활용한 한식 메뉴를 출시하는 것에도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원그룹은 한국맥도날드 인수를 추진했다가, 본사의 운영 자율권 제한에 반발해 최근 인수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