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물리학은 물리학계에서 오랫 동안 비주류 취급을 받아 왔다. 아인슈타인마저도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죽을 때까지 양자 물리학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양자를 이용한 기술은 그 사이에도 차근차근 진화 과정을 밟아왔다. 양자 컴퓨터가 최근 수년간 괄목할 만큼 발전을 거듭했고, 양자 통신과 양자 센싱 등 일상적으로 사용 빈도가 높은 양자 기술 역시 상용화 단계까지 성장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도 양자 얽힘 현상을 현실에서 증명한 세 명의 물리학자들에게 돌아갔다. 향후 미래 산업계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꼽히는 양자의 시대가 이제 막을 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코노미조선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양자의 개념이 무엇이고, 양자가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알아봤다.

[편집자 주]

티머시 코스타 엔비디아(NVIDIA) HPC 및양자 컴퓨팅 제품 리드 오리건 주립대 수학 박사, 전 인텔 퍼포먼스 라이브러리 설계자 겸 HPC 애플리케이션 엔지니어 사진 엔비디아

인공지능(AI) 컴퓨팅 분야 선도 기업인 엔비디아(NVIDIA)는 지난 9월 주최한 콘퍼런스(GTC 2022)에서 개방형 플랫폼인 ‘엔비디아 코다(QODA·Quantum Optimized Device Architecture)’를 발표했다. 이 플랫폼은 기존의 클래식 컴퓨팅과 양자 컴퓨팅 기술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솔루션으로, 개발자들이 양자 컴퓨팅 기술에 쉽게 접근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됐다.

클래식 컴퓨터가 전류의 온·오프 상태를 비트(bit·정보 처리 기본 단위)로 계산하는 CPU(중앙처리장치)와 GPU(그래픽 처리장치)를 사용하는 반면, 양자 컴퓨터는 큐비트(qubit·양자 컴퓨터 정보 저장 최소 단위)를 처리할 수 있는 양자 처리 장치(QPU)를 사용한다. 양자 컴퓨터의 두뇌로 볼 수 있는 QPU는 전자나 광자 같은 입자의 움직임을 측정해 특정 종류의 계산을 기존 컴퓨터 프로세서보다 훨씬 빨리 처리할 수 있지만,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하드웨어 수준이 아직 완전히 안정적이지 않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Jensen Huang) 최고경영자(CEO)가 GTC 기조연설에서 양자 컴퓨터 기술이 충분히 무르익기 전에 코다 같은 하이브리드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한 이유다.

티머시 코스타(Timothy Costa) 엔비디아 고성능 컴퓨터(HPC) 및 양자 컴퓨팅 제품 리드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클래식 컴퓨터와 양자 컴퓨터 기술을 결합한 QODA 같은 하이브리드 솔루션은 단기간에 과학적 혁신이 일어나도록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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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컴퓨터 발전은 어디까지 왔나.

”오늘날 초기 버전의 양자 컴퓨터를 운영하는 기업은 알리바바, 구글, IBM, 허니웰(Honeywell), 아이온큐(IonQ), 제너두(Xanadu) 등이 있다. 현재 이들이 제공하는 큐비트는 수십여 개 수준이다. 하지만 큐비트는 정보를 처리하거나 저장하는 과정에서 노이즈(noise·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실의 문제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선 수만 개, 혹은 수십만 개의 큐비트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양자 컴퓨터가 진정한 의미에서 유용성을 발휘할 시기로 진입하기까지 약 20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일명 ‘양자 컴퓨팅 우위의 시대(전통적 컴퓨터가 실행할 수 없는 업무를 양자 컴퓨터가 대신하는 시대)’가 언제 도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업계에서도 논쟁이 한창 진행 중이다. 희소식은 AI와 머신러닝 부문이 GPU 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큐비트 연산이 투입될 다양한 작업의 진행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컴퓨터도 현재의 GPU를 이용해 양자 시뮬레이션을 시험할 수 있게 됐다.”

양자 컴퓨터의 상용화를 앞당기려면 어떤 문제점들을 극복해야 하나.

”현재 운영 중인 양자 컴퓨팅 시스템은 소수에 불과하다. 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취약한 양자 상태를 안정적으로 만들려면 이른바 ‘컴퓨팅의 북극(computing arctic)’이라고 하는 절대 영도(absolute zero)에 가까운 극저온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또한 일부 양자 컴퓨터 모델은 두 개의 레이저를 쏴서 그사이에 원자가 들뜬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나의 큐비트를 생성할 수 있다. 이는 양자 컴퓨팅 시스템 환경을 구축하기 지독히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인데, 개인 작업실에선 이런 환경을 만드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양자 컴퓨터에서 필수적인 ‘얽힘(entanglement)’을 생성하는 데도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얽힘은 2개 이상의 입자와 떨어져 있어도 단일 단위처럼 움직이는 것을 일컫는데, 때로는 폭이 1㎜밖에 안 되는 전자파로만 이를 측정할 수 있다. 머리카락 굵기 정도의 이 전자파에 과도한 에너지가 실릴 경우, 큐비트의 얽힘은 물론, (양자의 또 다른 중요 특성인) 중첩(superposition)까지 모두 잃어버리는 이른바 ‘결 잃음(decoherence)’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결 잃음 상태는 고전적 컴퓨터에서 사망을 의미하는 블루스크린과 마찬가지다. 이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서 훨씬 더 많은 수의 큐비트를 개발해야 한다.”

어떤 분야에서 양자 기술을 활용할 수 있나.

”양자 컴퓨터는 약물 개발, 기후 연구, 머신러닝, 금융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전에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기존 컴퓨팅 시스템에선 미래 (완성 단계의) 양자 컴퓨터를 시뮬레이션하면서 연구자들이 양자 알고리즘을 더욱 빠르고 적합한 방식으로 개발하고 테스트한다.

양자 컴퓨터와 머신러닝을 이용해 신약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회사 멘텐(Menten) AI는 기존 컴퓨터에서 양자 컴퓨터의 시뮬레이션 속도를 높이는 엔비디아의 ‘쿠퀀텀(cuQuantum)’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멘텐 AI는 이 소프트웨어로 단백질 상호작용을 시뮬레이션하고, 신약 분자 구조를 최적화한다.

또한 양자 컴퓨팅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인 QC 웨어(Ware)는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미 에너지국 산하 연구소)의 슈퍼컴퓨터인 ‘펄머터(Perlmutter)’에서 쿠퀀텀을 사용하는 방식을 통해 신약 개발과 기후 과학을 연구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세계 최초로 양자와 클래식 컴퓨터를 통합한 통합 컴퓨팅 플랫폼 엔비디아 코다를 개발했는데, 이를 통해 AI, HPC, 헬스,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최근엔 양자가 반도체의 수명을 연장할 것이라는 관측 결과도 나오고 있다.”

엔비디아 QODA는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나.

”클래식 컴퓨팅과 양자 컴퓨팅 시스템을 결합한 QODA 같은 하이브리드 솔루션은 단기간에 과학적 혁신이 일어나도록 할 수 있다. 개발자에게 강력하고 생산적인 프로그래밍 모델을 제공해 양자 컴퓨터 분야에서 혁명을 일으킬 것으로 본다. 화학, 약물 개발, 재료 과학 등 응용 프로그램은 양자 컴퓨터와 원활하게 통합될 수 있다.”

엔비디아의 양자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기업을 소개해 달라.

”이미 양자 기술을 이용하는 수십 개의 조직이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쿠퀀텀을 사용하고 있다. 쿠퀀텀은 구글의 큐심(qsim), IBM의 퀴스킷 에어(Qiskit Air), 제너두의 페니레인(PennyLane), 클래식(Classiq)의 퀀텀 알고리즘 디자인(Quantum Algorithm Design) 등 주요 양자 소프트웨어 프레임워크 안에서 활용된다. 아마존 웹서비스(AWS) 역시 자사의 양자 컴퓨팅 서비스 ‘브라켓(Bracket)’ 안에서 쿠퀀텀을 사용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양자 기술은 AI나 머신러닝에는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까.

”AI와 머신러닝 부문에 큐비트 연산이 투입돼 다양한 작업을 가능케 할 수 있다. 엔비디아는 이미 자체 AI 슈퍼컴퓨터인 셀린(Selene)에서 최첨단 양자 시뮬레이션을 구동한 바 있다.”

양자 컴퓨터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까.

”양자 컴퓨터는 전통적 컴퓨터가 수행할 수 없거나, 완료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연산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기존 컴퓨터에서 8비트는 0과 225 사이 숫자 하나를 나타낸다. 반면, 양자 컴퓨터는 중첩의 특성 덕분에 8큐비트가 0과 225 사이의 모든 숫자를 동시에 나타낼 수 있다. 모든 가능성을 (기존 컴퓨터처럼) 순차적으로 계산하는 대신 한 번에 처리하기 때문에 엄청난 속도를 달성할 수 있다. 전통 컴퓨터가 인수분해를 통해 한 번에 한 개씩 여러 차례에 걸쳐 연산을 진행하는 사이에 양자 컴퓨터는 단 한 번의 과정으로 모든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양자 컴퓨터는 화학과 재료 과학 등의 분야에서 시뮬레이션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많은 한계를 격파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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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세상을 뒤바꿀 양자 기술 ·

①미래 ‘게임 체인저’ 양자 기술, 패권 경쟁 속으로

②아스페·클라우저·차일링거,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

③[Infographic] 양자 기술 혁명이 온다

Part 2. 양자 기술 기업들

④[Interview] 티머시 코스타 엔비디아 HPC 및 양자 컴퓨팅 제품 리드

⑤[Interview] 백한희 IBM 왓슨연구소 연구원

⑥[Interview] 칼 와드 아마존웹서비스(AWS) 아시아·태평양·일본 공공 부문 솔루션스 아키텍처 총괄

⑦[Interview] 하민용 SK텔레콤 CDO

Part 3. 전문가 제언

⑧[Interview] 한상욱 KIST 양자정보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