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극동 항구에 기항한 중국 유조선. /연합뉴스

미국이 러시아를 제재하기 위해 추진 중인 러시아산(産) 석유 가격 상한제를 두고, 정작 제재의 핵심인 해상보험업계는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3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러시아의 전쟁 자금을 고갈시키고 유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유가 상한제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 중이다.

유가 상한제를 실현할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러시아산 원유가 상한선을 넘는 가격으로 거래될 경우 해상보험 등을 적용치 못하도록 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상법을 전공한 한 국내 변호사는 “국제 해사법상 원유 등이 해상 운송되려면 해운보험은 필수”라며 “유조선은 운항 과정에서 원유 유출 등 사고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해운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면 운항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해상보험업계는 대(對)러시아 제재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특히 해상보험 시장은 미국의 맹방이라 할 수 있는 영국과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주도해 공동 전선을 형성하기에도 용이하다.

하지만 NYT는 유가 상한제를 둘러싼 ‘검증되지 않은 개념들’이 에너지 전문가들과 해운 보험 업계에서 회의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책임의 범위와 검증 방식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이로 인해 EU와 영국의 보험사들은 자신들이 상한제 준수 여부 확인 의무를 져야 할 유가상한제 도입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글로벌 해운 보험사인 노스 잉글랜드 P&I 어소시에이션(North of England P&I Association Limited)의 이사 마이크 솔트하우스는 “준수 증거를 요청하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정교하게 속이려고 한다면 마땅한 답이 없다”면서 “집행 매커니즘으로서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은 정책”이라고 말했다.

옐런 장관으로서는 전면적인 러시아산 원유 제한이 시장 공급을 줄여 유가를 앙등시킬 수 있기에 유가 상한제를 통해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지만, 보험사들이 제재 위반 가능성을 부담스러워 해 러시아산 석유에 아예 보험을 판매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해상보험연맹의 라르스 랑에 사무총장은 “보험 업계는 상한제를 준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우리가 이해하고 준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재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전세계 국가들이 유가 상한제 도입에 모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가 상한제에 동의하지 않는 국가에서 시장 가격으로 러시아산 원유를 거래할 경우 제재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미 재무부 당국은 전 세계적 공조 문제를 경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압박에도 전통적 우방인 러시아에게 헐값으로 원유를 사고 있는 인도는 정부 차원에서 보험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는 자국 보험사와 홍콩 브로커를 통해 러시아 국적 화물선 4척에 재보험에 가입하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한국은 지지의사를 밝혔지만, 인도네시아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등 여론을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미 재무차관인 월리 아데예모는 “국제적 지지 하에 재무부에서 상한선을 설계하고 보험사의 준수 확인 의무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오바마 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는 “수요 카르텔은 성공한 사례를 찾기 힘들고, 음지에서 이뤄지는 거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반응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엘비라 나비우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달 “러시아가 상한제를 적용한 국가에는 석유를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고, 러시아 당국자도 생산비 이하로는 판매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에게 원유를 의존하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이 같은 위협에 굴복할 가능성이 크다.

JP모건은 러시아가 상한선을 무시할 경우 하루 300만 배럴의 러시아산 원유가 공식적인 세계 시장에서 사라지면서 배럴당 최대 19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경고했다.